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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Mar 08. 2019

귀 호강한 날

딸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의 정기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1년에 한 번 그동안 갈고닦았던 실력을 가족들 앞에서 뽐내는 시간이다. 모처럼 예쁜 드레스에 구두를 신고, 머리도 곱게 빗어 예쁜 핀을 꽂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서 생명의 활력이 넘친다.    


작년에 한 번 와봤다고 무대를 찬찬히 둘러본다. 무대에 커다란 피아노 한 대와 작년엔 못 봤던 드럼이 놓여 있다. 새로운 레퍼토리가 추가된 모양이다. 작년엔 알록달록 풍선 장식이 가득했는데 사라지고, 무대 앞 계단에 예쁜 트로피가 합창단처럼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7살 아이들부터 연주가 시작된다. 선생님의 소개와 함께 이름이 불리니, 아이들이 베베 몸을 꼬며 나온다. 좀 전에 복도에서 방방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쭈뼛쭈뼛 걸으며 손은 어디에다 둘 줄 모르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그마저도 잊고 피아노 앞에 먼저 앉아 다시 나와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한 번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연주가 없다. 몇 번씩 끊겼다 이어진다. 리코더 연주는 삑사리가 나고, 우쿨렐레는 코드를 제대로 잡지 못해 타악기 소리가 난다. 드럼 연주는 피아노 반주와 따로 논다. 조마조마 불안하지만, 함께 하는 가족들이 알아서 연주를 따라가고 박수로 박자를 맞춘다.

     

ⓒ신작단


차례차례 학년이 올라가고 드디어 딸아이의 순서다. 빼빼 마른 몸에 푸른색 드레스를 감고 총총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다. 수줍은 듯 혀를 쏙 내밀며 인사하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연주를 시작한다. 쇼팽의 녹턴이다. 어제 들었던 거에 비해 굉장히 잘했다. 연주하다가 한번 실수를 했지만, 다시 건반을 짚어 또박또박 연주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사실 어제 피아노 연습하는 것을 들어보고는 부족하다고 느껴 억지로 피아노 앞에 앉게 해 연습을 시켰다. 싫어하는 아이 모습이 역력했다. 연주회 날 잘하든 못하든 결과에 상관없이 엄마, 아빠가 손뼉 치고 응원하겠지만, 연주회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좀 다잡았다. 그게 좀 마음에 걸렸는데 밝게 웃으며 잘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마지막 모든 아이가 함께 연주하며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가 날 위해 준비한 것 같다. 아이가 하는 것에 어른인 내 기준에 맞춰 평가하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일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깨닫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얼마나 연습을 했겠나. 나는 남들 앞에 서기 위해 이리 노력해 본 적이 언제였나 반성도 든다.      


자주 끊어졌다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 코드를 제대로 잡지 못해 타악기 같은 소리가 나던 우쿨렐레, 삑사리 나던 리코더 연주, 박자가 따로 놀던 드럼 소리. 오늘 밤 아이들이 낸 소리는 이 세상 그 어는 것보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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