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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Mar 11. 2019

이 모든 것을 위하여! - 딸과의 첫 번째 산행

2017년 2월

토요일 산에 다녀왔다. 직장 동료들과의 산행이다. 2개 팀 연합으로 부서장과 함께다. 산도 싫고, 술도 싫다. 평소 일이나 잘하면 됐지, 주말까지 나와 산에 오르고, 술까지 먹어야 하는 걸 좋아하는 직원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싫다. 그렇다고 부서의 단합에 해를 끼치는 직원으로 찍힐 용기는 없다. 조용히 산행의 의미에 동조하며 따라나섰다.     


전날 밤, 산에 간다고 얘기하니 남매가 따라가겠다고 난리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10살은 오를만하지만 7살은 무리란다. 쇼트트랙 경기에서 발을 내밀어 승패가 갈린 선수들처럼, 남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번 산행에 큰 의미가 생겼다. 10살 딸아이와 함께 하는 첫 산행이다. 동네 뒷동산과 서울 남산, 성산 일출봉에 가족과 함께 오른 적은 있지만, 이번은 높이가 다르다. 737m의 왕방산이다. 능선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계곡을 치고 올라가는 산행이다. 그리 길지 않은 경사를 너덧 번 오르면 정상에 도달하는 성인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초보 수준의 등산코스다.        


사무실에 모여 함께 차를 타고 왕산사 입구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와서 바지가 자꾸 흘러내린다는 아이의 말에 살펴보니, 고무줄 한쪽 묶임이 풀렸다. 급하게 빼내 허리띠처럼 둘러 주었다. 시작 전부터 액땜일까? 좋지 않은 징조일까? 한파주의보여서 걱정했는데, 날은 좋다.  

  

등산로 입구ⓒ신작단


첫 번째 경사는 제법 넓은 길이다. 길 가운데는 눈과 얼음이 쌓여있다. 길가의 낙엽을 밟으며 올랐다. 딸은 쉴 새 없이 재잘댄다. 아직도 눈과 얼음이 있는 게 신기하다. 낯선 삼촌과 이모의 이름을 묻고, 푸드덕거리는 새를 보았다며 내 소매를 붙잡는다. 등산로 표지판이 있는 진짜 등산로 입구에 왔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스럽게 생긴 등산로다. 길이 좁아지고 높이가 제각각인 나무계단이 우리를 맞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위를 바라보고,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삼촌과 이모들의 격려와 조금만 가면 된다는 반복된 거짓말을 들으며 두 번째 경사를 올랐다. 다 함께 쉴 때 오를만하냐 물으니 괜찮단다. 그때부터 난 괜찮지 않았다. 3년 전 산행이 가장 최근이고 평소 운동은 마음만 먹는 것이니, 슬슬 체력이 바닥을 보였다. 그 이후로 딸은 가벼운 몸으로 사뿐사뿐 올랐고, 어떤 코스에서는 나를 앞장서 기다리기도 했다.    


정상에 올랐다. 딸에겐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엄마, 아빠가 결혼해 딸아이가 태어났던 집, 1층에 살아 베란다 밖에 그늘막을 치고 물놀이를 하던 집, 지금 사는 집, 가을에 이사 갈 집, 엄마와 아빠가 다니는 사무실, 동생과 함께 다닌 어린이집, 지금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를 함께 찾아보았다.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비적인 사진도 찍었다.

    

ⓒ신작단


내려오는 길, 아빠의 도움이 필요했다. 오를 땐 가벼운 몸이 유리했지만, 내려올 땐 짧은 팔다리가 불리했다. 손을 꼭 붙잡기도 하고, 안아주고, 로프를 당겨주기도 하며 안전하게 하산했다.     


점심이 준비된 식당. 모두가 한 차례씩 건배사를 하며 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내게 뭐 하는 거냐며 귓속말을 한다. 건배사가 거의 다 돌고, 딸에게도 차례가 왔다. 뭐라 뭐라 말은 못 하겠고, '위하여'는 잘할 수 있겠단다. 딸아이와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삼촌과 이모들에게 고맙고,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며 내가 먼저 몇 마디 했다. 소주잔에 사이다를 가득 채운 딸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눈과 코, 입, 볼이 모두 함께 웃고 있다. 마지막으로 딸이 외쳤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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