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랑도 그렇고 인연도 그렇고 다 그런 법이다. 뭐든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도 모른다. 내 노력 여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런 예측 불가능성이 되려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거지.
내가 원래 고양이에 애정을 주는 인간은 아니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 나 살기가 너무 바빴다. 다른 생명체에 관심을 쏟기엔 내 삶이 팍팍하니까. 그러다 이번 여름 우연히 ‘요시’를 만났다. (일본 드라마 수박에 나오는 고양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 매일 밤 산책을 하다가 꼭 만나는 고양이였는데, 다른 길고양이들과 달리 몇 번 간식을 챙겨주니 냐옹거리며 친한 척을 하더라. 고양이의 호감신호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던 나는 머쓱해하며 지나가기 일쑤였지만 사실 언젠가부터 요시를 만나는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니 요시는 어느새 나의 일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요시는 궁디팡팡을 좋아하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통통한 고양이다. 말은 어찌나 많은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루는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보기 드문 폭우에 산책로에는 러닝 하는 사람들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요시를 찾아갔더니 길 한 복판에 우뚝 서 비를 맞고 있었다. 당연히 어디 다른 곳에 잘 피해 있을 줄 알았는데... 급히 우산을 씌워주고 챙겨 온 간식을 먹였다. 그 작은 우산에 고양이와 함께 몸을 피하며 나는 예상치 못한 눈물을 흘렸다. 그건 아마 죄책감의 눈물이었겠지. 이렇게 잠시 우산을 씌워주고도 나는 언젠가 따뜻하고 안전한 나의 집으로 이 아이를 두고 돌아간다는 것. 그때 나는 내가 인간인 점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알았다. 나는 요시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요시가 사라졌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길고양이인지라 연락도 할 수가 없고, 찾을 방법도 없었다. 며칠은 돌아오겠지 하며 근처를 찾아다니고 기다려도 봤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니 나도 모르게 머리에서는 온갖 무서운 상상이 오갔다. 왜 꼭 소중한 것은 잃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혹시 또 너무 애정을 많이 줘버렸나? 요시를 집으로 데려올지 몇 번이나 고민했었는데, 그때마다 결국 용기 내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거대한 상실감의 크기에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요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어느 순간 요시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겠지. 슬픔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2주가 조금 넘게 흐른 무렵, 평소 나보다도 더 요시를 잘 챙겨주시던 여성분 두 분을 우연히 만났다. 나도 모르게 인사말을 건너뛰고 대뜸 “고양이.. 고양이 보셨어요?”라며 물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모두가 요시를 사랑한 건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쫓겨나며 며칠을 노숙한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뒤, 요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펑펑 울었다. 살아 있어 준 것에 대한 감사함, 안도감, 미안함. 복잡한 눈물이었다. 당장이라도 우리 집에 데려가 따뜻한 곳에 눕히고 질릴 때까지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지금 내 무릎에는 양양이가 있다. 양양이가 누구냐고? 혹시 요시가 이름을 바꾼 거냐고? 아쉽게도 아니다. 양양이는 3일 전 우리 집에 왔다. 나와 엄마는 여전히 요시의 입양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아빠가 큰 가방에 작고 마른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온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빠를 마주쳤을 때 나는 황당함의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알아? 얘 누구야? 어쩌려고 그래!!!”
자초지종은 이랬다.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동네 뒷산에 산책을 갔던 아빠 앞에 양양이가 나타났는데, 너무 마르고 털도 엉망이었다는 거다. 안타깝네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양양이가 비틀거리는 몸으로 1km를 쫓아왔단다. 결국 마음이 약해진 아빠는 양양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한 번도 제대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내가 정말 가족으로 이 처음 보는 작은 고양이를 맞이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그렇게 좋은 사람일까?
3일이 지난 지금, 내 무릎의 양양이. 아직은 서툴지만 서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 고양이를 키울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던 나의 어린 시절의 예감도 빗나갔고, 요시와 가족이 되지 않을까 하던 최근의 예감도 빗나갔다. 너무나도 낯선 아기고양이가 나의 인연이었다. 평생을 나만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던 세계가 붕괴되고 한 차례 확장을 거쳤다. 앞으로 양양이와 함께할 시간이, 양양이의 성장과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볼 설렘에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랑도, 고양이도 그런 것이다.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모양과 방향으로 나를 찾아온다. 우리는 그저 그 예측 불가능성에 몸을 맡긴 채 어디선가 먼 미래에서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 모든 인연을 맞이하면 된다.
*요시는 잘 있다. 그 두 여성분과 함께! 새로운 곳에 집을 장만했고 살이 조금 더 통통하게 올랐다. 이제는 제법 다른 고양이들과 사람도 경계할 줄 안다. 입맛도 까다로워졌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