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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Oct 12. 2018

아미미술관에서,
삶은 그림이 되다

   꿈같은 한 날의 기억이 있다. 새하얀 아침에 눈부신 햇살이 기울어져 창안으로 들어올 때, 희고 둥글며 여리고 보드라운 일곱 살의 딸과 나누었던 대화의 기억이다. 아프지만 진심 담아 빛나던 말들이 상처를 훑고 지나가듯 떨어진 4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비가 쓸쓸하지 않게 차분히 내리던 그 가을날에, 아이 둘을 데리고 당진으로 훌쩍 떠났다. 2014년, 우리가 만난 아미미술관은 단풍으로 붉었고 비로 인해 촉촉했고 우리만의 숨결로 고요했다. 나는 유난히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았고, 작은 꼬마들은 한없이 해맑은 웃음으로 공간을 적시었던 아미미술관에 언젠가 다시 오겠노라 마음먹었지만, 그게 왜 4년을 미룰 만큼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는지. 겨우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는 그곳에.





다시, 만남



   어떤 전시를 하는지 미리 알아보거나 개의치 않고도 찾아올 수 있는 곳, 바로 아미미술관이다. 폐교를 미술관으로 바꾸어 개관했기에 오래고 깊은 시간의 숨결이 있다. 봄과 여름에는 미술관 외벽을 타고 흐르는 초록빛 넝쿨식물이 싱그럽고, 가을엔 붉은 낙엽이 카펫처럼 펼쳐진 길 위를 바스락 거리는 소리 들으며 걷고, 겨울엔 온통 하얗게 변한 고요한 미술관을 만날 수 있는 곳. 미술관의 공간과 정원 자체가 주는 감동으로 충분하여 전시되는 작품들은 덤일 뿐이다. 어떤 작품이 전시되어도 느긋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여유가 아미미술관에는 있다. 미술관 복도에 들어서면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오색빛 콘페티 같은 설치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아래 서 있으면 축복이 내리는 듯했다. 기분 상쾌한 복도를 따라 걷다가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빛을 가득 머금은 연둣빛의 잎사귀들이 창문을 흐드러지게 덮은 모습을 화하도록 바라보았다. 스피아민트 껌을 씹은 것처럼 마음이 시원하게 샤워를 한 것 같았다. 







    4년 전, 일곱 살의 두 딸들과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써 내려간 나의 여행 육아 에세이 <너에게 한 번뿐인 일곱 살엔>과 그때 출판사에서 만들어주신 책 속 사진이 담긴 엽서를 가방 속에 잊지 않고 챙겨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 관람객들로 인해 미술관 뒤편의 카페 ‘지베르니’는 활기가 넘쳤다. 내 마음을 아는 남편이 관장님 사모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저, 이제야 왔어요. 4년 만에.” 소란한 음성들 사이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선물로 드린 책을 보시더니 미소 지으시는 모습이 고왔다. 누군가와 추억을 나누니 행복한 기분이 내 가슴 끝까지 찰랑거렸다. 





삶은, 그림



   소중한 추억과 만나러 가는 오늘은 어떤 책이 어울릴까 생각하며 책장 앞에 잠시 섰다가 <삶은, 그림>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들고 나왔다. 6년 전쯤 읽은 이 책은 내 마음속 책 목록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끼는 책이다. 한 번 읽고 더는 보지 않는 책들이 많아져 결국엔 처분하던 날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책이다. 이 책은 화가 김원숙 님이 자신의 작품 이미지와 함께 생각을 기록한 인생 에세이다. 그녀의 신앙심이 삶과 생각 그 자체에 녹아든 글이 위안과 깨달음을 준다. 보이는 것들이 결국엔 허망함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영원함을 확신에 찬 어조로 써 내려간 그녀의 글이 좋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담아내려 노력한 그녀의 그림이 좋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이요. 인간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사랑이요. 인간을 창조할 수 있게 만든 그 사랑, 인간을 끝까지 참아주신 그 사랑이요. 인간을 구원한 그 사랑, 인간의 마음속에도 깊숙하게 넣어주신 그 사랑이요.” 사랑이 답이고, 마침내 늘 사랑이라고. 사랑 예찬자가 되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책을 읽으니 책 속의 그림이 온통 사랑이고, 책 속의 글들이 결국 사랑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수년 전에 줄 쳐놓은 바래진 형광색으로 도드라진 문장을 다시 읽었다. 과거와 만나는 시간이다. 그때보다 나는 몇 센티미터나 자랐을까, 내 마음은 몇 밀리리터나 커졌을까. 보이는 나는 나이 들어 젊은 기운이 점점 사라진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나는 쉼 없이 커지고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기를.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해지기를. 온몸의 수분이 점점 줄어들고, 얼굴엔 낯선 실 같은 주름들이 많아진다 하여도, 내 안의 보이지 않는 나는 하루하루 물기를 머금어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기를. 과거와 만나도 부끄럽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매일 하늘을 향해 자라나기를...


부분들을, 조각들을 그리는 것은
전체가, 완전함이 있다는 암시이며 믿음이고,
아픔을, 부러진 것을 그리는 것은
완전하며 흠 없는 그때를 갈망하는 것이다.




    펴 놓은 페이지 위로 동그랗게 빛그림을 그리는 햇빛의 장난을 바라보았다. 파르르르 떨리며 퍼졌다가 오므라들었다가 합쳐지는 빛의 자취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빛이 흔들리고, 그 위로 내 눈동자도 흔들려 내 마음이 간지러웠다. 내 눈앞의 빛 조각들은 온전한 전체의 빛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이 빛 조각들이 잠시 스러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빛만을 신뢰해야 함에 대한 은유이다. 빛이 잠시 사라지거나 깨졌다고 슬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부분만으로도 빛이 존재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빛 그 자체이신 그분의 의도된 드라마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완전하고 흠 없는 그 빛을 갈망하게 하려는 그분의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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