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는 일은,

당신의 아픔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by Jianna Kwon


어지러움을 주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운전할 때 어지럼증이 악화되고 순간적으로 시야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길이 기울어져 보이는 상태가 되어 진료실을 찾았다. 몇 가지 질문과 대화를 통해서 그녀가 뇌질환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으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섣부른 안심보다는 확인을 통한 안심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신경과 진료를 권했었다. 신경과 진료를 권하기 이전에 시행했던 혈액검사 결과에 소소한 이상 소견이 있어서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였고 한 달 후쯤 다시 내원한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 신경과 진료를 보았다는 환자는 별문제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전에 만났을 때, 돌봐야 할 어린 자녀가 여럿 있고 암 투병 중인 어머니도 챙겨야 하는 상황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다. 그 사이에 어머님께서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며, 내 앞에 앉은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내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질병 때문이 아닌, 삶의 무게와 결국엔 받아들여야 하는 슬픔에 대한 울음이었다.





문득,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 떠올랐다.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몸의 불편함이나 아픔을 가지고 내원하지만, 사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그 사람이 겪었던 과거와 지금 처한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닥칠 미래 모두를 껴안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치료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문제는 내게 가져오는 증상의 많은 부분은 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 상태에서 기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상황과 사정을 듣다 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어쩌면 증상의 뒷이야기들에 대한 위로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치매에 걸린 노모와 교통사고로 다쳐 걸을 수 없는 아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묵묵히 감당하며 밤마다 술로 위안을 삼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버림받은 기분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이는 폐경 이후 감정적으로도 힘든 상태인데 남편이 외도를 하는 바람에 어디에 말도 하지 못하고 가슴 뻐근한 통증을 느낀다. 또 누군가는 얼마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아들이 너무나 안쓰럽고, 홀로 남은 며느리가 애처로워 가슴은 피멍이 들고, 먹는 것마다 도무지 소화가 되지 않고 속이 쓰린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 사람의 삶과 마주하는 일이다. 질병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치료해야 하는 때가 있고, 증상 뒤에 숨은 환경이나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약 처방이 필요할 때가 있고, 위로와 응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아프거나 불안한 사람들, 어떠한 문제를 하나 이상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며, 어떤 면에서는 약자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인 내가 그런 사람인 당신과 만났을 때, 당신의 눈물 앞에서 내 시간을 떼어주는 일은 결코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