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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가치관 변화 속 신데렐라 드라마의 성공기제(1)

<사내맞선>을 중심으로

※원제 : 여성 시청자의 가치관 변화 속 신데렐라 드라마의 성공 기제 - <사내맞선>을 중심으로


Ⅰ. 서론


1. 신데렐라 드라마의 정의 및 변화 양상     


신데렐라 드라마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신데렐라 서사’가 드라마의 주축을 담당하는 드라마를 의미한다. 신데렐라의 원형적인 서사구조는 기본적으로 ‘불행한 여주인공 – 마법적 도움 – 왕자와의 만남 – 신발시험 – 결혼’으로 요약 가능하지만(임다빈, 「김은숙 신데렐라 드라마의 도식적 내러티브 분석 : <파리의 연인>, <상속자들>, <도깨비>를 대상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2019, 21쪽), 오늘날의 신데렐라 서사구조는 꼭 이러한 방식만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더욱 단순화되어, 세부적인 설정들은 차치하고‘평범한 여자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소위 신분 상승이라는 계급 변화를 맞이하는 양상을 띠기만 하면 ‘신데렐라’라고 취급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서구유럽 및 동양에서 오랜 시간 벽을 뚫고 전승해옴(함복희,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콘텐츠 요소 연구」, 『語文論集』, 44, 중앙어문학회, 2010, 222쪽)과 동시에, 사회 체제의 변화에 발맞추어 함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20세기와 21세기를 거쳐, 현대화된 신데렐라 서사는 젠더 및 자본주의의 문제와 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축약된 신데렐라 서사는 보기에 따라 수많은 로맨스 클리셰의 한 종류라고도 할 수 있다. 로맨스 클리셰란, 멜로‧로맨스 장르에서 대중들이 흥미를 느끼는 요소가 여러 차례에 걸쳐 검증됨으로써 그 자체로 전형화된 재생산되는 서사들을 의미한다. ‘소꿉친구 서사’(<쌈, 마이웨이(2017)>, <지금 우리 학교는(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재회 서사’(<자이언트(2010)>, <사랑의 불시착(2019)>, <펜트하우스(2021)>, <그해 우리는(2021)>) 등 수도 없이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멜로‧로맨스 장르의 드라마들이 이야기에 클리셰를 반영하고 이를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그해 우리는(2021)>의 경우 ‘혐관 서사’(‘혐오+관계’의 준말. 커뮤니티 용어로 캐릭터가 서로 싫어하는 관계를 가리키는 말. 로맨스 장르에서 쓰일 때는 주로 서로 싫어하는 관계였다가 오해나 편견이 해소되면서 사랑하게 되거나 호의적으로 변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재회 서사’ 등 클리셰를 집대성한 초기 설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클리셰 덩어리 ‘그해 우리는’은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었나‘”, 씨네리와인드, 2022년 2월 15일 승인, 2022년 6월 2일 접속, http://www.cine-rewind.com/5485) 이처럼 클리셰는 드라마의 화제성이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중대한 요인으로, 신데렐라 서사도 마찬가지다. 


신데렐라 서사가 하나의 클리셰가 되기까지 한국의 신데렐라 드라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남영숙은 TV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드라마가 적극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시점을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로 보고 있다. 화제작을 중심으로 나열하자면 <별은 내 가슴에(1997)>, <신데렐라(1997)>, <토마토(1999)>, <햇빛 속으로(1999), <진실(2000)>, <이브의 모든 것(2000)>, <비밀(2000)>, <귀여운 여인(2001)> 등을 꼽을 수 있으며, 특히 1999년에서 2000년까지 2년 동안은 매해 세 편 이상이 제작될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누렸다. 2001년 연구 당시 일반적으로 공유된 신데렐라 드라마의 공식은 ‘권선징악’, ‘사랑의 삼각구도’, ‘신분상승’등으로 합의되었다.(남영숙, 「TV '신데렐라' 드라마 장르연구 :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주요 화제작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2001.) 그러나 이후에 방영된 ‘김은숙식 신데렐라 드라마’나 <꽃보다 남자(2009)>를 살펴보면 2000년대 초반에 통용되던 공식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김은숙 작가는 2003년 SBS 미니시리즈 <태양의 남쪽>을 시작으로 2022년 현재까지 총 13편의 드라마를 썼으며, 그중에 <파리의 연인(2004)>, <시크릿 가든(2010)>, <상속자들(2013)>, <도깨비(2016)>이 대표적인 신데렐라 드라마이자 히트작이다. 이 작품들에는 대체로 삼각구도가 등장하지만, <도깨비(2016)>에 이르러서는 삼각구도가 작품의 골자를 이루지는 않는다. 게다가 꼭 작품의 핵심이 권선징악과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없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다층적이고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날 뿐 반드시 이야기의 흐름이‘악을 벌하는’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신데렐라 드라마로 분류되는 <꽃보다 남자(2009)>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초반만 봤을 때 징벌의 대상은 오히려 남자주인공 쪽이다. 일본의 원작을 각색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한국 시청자들에게 적극적 수용되었다는 점에서에서 ‘권선징악’은 더 이상 신데렐라 서사의 핵심에 있지 않게 되었다. 


신데렐라 드라마가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었던 2016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 드라마에서는 재벌 남자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 만큼 신데렐라 서사가 다뤄지는 일은 매우 흔하다. 주말 드라마 가운데 히트작으로는 <내 딸 서영이(2012)>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데, 동일 작가의 같은 시간대 작품인 <황금빛 내 인생(2017)>에는 똑같이 재벌 남자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생활력 강한 여자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결말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내 딸 서영이>의 여자주인공이 재벌 가정에 안정적으로 결합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반면, <황금빛 내 인생>의 여자주인공은 재벌 가정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꿈을 향해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갈무리된다. 이야기 전반이 신데렐라 서사를 따라가다가도 종국엔 신데렐라 서사와 상반되는 결말을 맞이한 것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의 변화가 감지된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도 신데렐라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여자주인공의 특징이 ‘가난’과 ‘불행’에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능력이 출중한 비서 설정이라는 점에서 차별화가 눈에 띈다. 자아실현을 이유로 더 이상 남자주인공의 비서 역할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여자주인공 캐릭터는 평범한 신데렐라 캐릭터와 다르게 확실히 주체적이다. 여자주인공의 능력과 외모는 남자주인공의 재벌 부모의 마음에도 흡족할 정도다.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속 여자주인공도 남자주인공에게 의존적이지만은 않다. 게다가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난다. 이처럼 2016년 전후를 기점으로, 가난하고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어 시청자로 하여금 동정과 연민을 유발하는 여자주인공이 재벌 남자주인공과의 사랑을 통해 신분을 상승시키는 식의 전형적인 신데렐라 서사는 보기 드물게 되었다. 이처럼 최근의 신데렐라 드라마들은 여성 캐릭터를 보다 주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둘의 결합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사내맞선(2022)> 작품의 전형성 및 문제제기    


기존에 신데렐라 콤플렉스 등으로 논의가 되어왔던 신데렐라 서사는 이처럼 페미니즘적 기류에 적합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2019)>는 주인공 여성과 로맨스를 형성하는 남성 캐릭터의 계급을 의도적으로 여성보다 낮게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신데렐라 서사를 전복하려고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김미라, 「포스트페미니즘 드라마의 서사와 정치적 함의-TV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65, 한국극예술학회, 2019. 343쪽) 이러한 변화는 여성향 드라마의 전반적인 기조다. 여성향 드라마는 대체로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여성들의 욕망을 여성캐릭터를 통해 구현함으로써 이를 지켜보는 여성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을 큰 목적으로 삼는다.(최지운, 「로맨스드라마 속 역하렘 설정 연구:<사랑의 불시착>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인문콘텐츠』, 60, 인문콘텐츠학회, 2021. 134쪽.) 기존 신데렐라 드라마가 비현실적인 남성 캐릭터와 관계 맺기를 통해 그러한 대리만족을 성취하려고 했다면, 요즘의 여성향 드라마는 그러한 관계 맺기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에서 벗어난 듯한 드라마가 눈에 띈다. <사내맞선(2022)>이 그러하다. 주체적인 여성상보다는 남성 캐릭터에게 매력을 부여하는 데에 집중했다는 점, 결과적으로는 하위 계급의 여성 캐릭터가 안정적으로 상위 계급의 가정에 편입하는 결말을 맺었다는 점 등에서 전형성이 드러난다. 문제는 이 작품이 요즘처럼 한국 로맨스 드라마가 크게 성공하기 어려운 드라마 시장에서(““시청률 부진에 빠지다”…저조한 성적의 청춘 로맨스 드라마”, 뉴스핌, 2021년 7월 19일 입력 및 수정, 2022년 6월 2일 접속,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10719000696)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는 점이다. 로맨스 드라마가 실패하는 요인에는 수없이 많은 요인이 존재하지만, 주로 많이 지목되는 원인으로는 ‘사회적 풍토와 맞지 않는 사랑 이야기’, ‘답답한 전개’, ‘현실과의 괴리감’등이 있다.(“외면받는 로맨스 장르…이유는?”, 한국일보, 2021년 8월 1일 입력, 2022년 6월 2일 접속,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72809150000821) 그러나 이러한 원인들만으로는 로맨스 드라마가 실패하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내맞선> 역시 따지고 보면‘사회적 풍토’에 어긋나고, ‘현실과의 괴리감’가 크게 느껴지는 대표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내맞선>은 SBS 12부작 미니시리즈로,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여자주인공 ‘신하리’(김세정 분)과 남자주인공 ‘강태무’(안효섭 분) 간의 계약 연애를 그리는데, ‘신하리’가 재벌 친구인 ‘진영서’(설인아 분)를 대신해 파토 내려 맞선에 나갔다가 자기 직장 상사인 ‘강태무’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이다. ‘강태무’는 자신에게 맞선을 재차 강요하는 할아버지를 뿌리치기 위해 변장한 ‘신하리’에게 계약 연애를 제안하고, 그렇게 ‘신하리’는 정체를 숨긴 채 직장 상사와 계약 연애를 이어나가다가 마침내 ‘강태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계약 연애’는 흔히 쓰이는 로맨스 클리셰 중 하나로, 이 드라마는 신데렐라 서사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기 위해 계약 연애 클리셰를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만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작품의 두드러지는 전형성은 시대를 역행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남성과 여성 간 계급 차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의 고난을 남성 캐릭터가 자신의 압도적인 능력을 활용해 해결한다는 점, 여성 대립자를 등장시킨다는 점, 남성 캐릭터의 모성적 결핍을 여성 캐릭터가 채워준다는 점 등이 그러하며,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이미지를 반영하고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기에 문제가 된다. 신데렐라 드라마가 생산되었다고 한들 비판적으로 수용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효력이 없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따르면,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문화물 전반은 한 사회의 신화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며 대중문화물의 소비자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신데렐라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시청하는 행위는 결국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에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기존의 논의는 김은숙의 신데렐라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의 신데렐라 드라마가 왜 성공하였고 이것이 수용자의 어떤 심리와 결합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를 양산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는, 새롭게 등장한 포스트페미니즘 드라마에 주목하고 그것의 함의를 설명하는 논의(김미라, 위의 글)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도 여전히 드라마 시장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여전히 신데렐라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기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문제시되는 현상을 문화적 재생산론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글은 김상미 선생님의 성균관대학교 2022학년도 1학기 국어국문학과 수업 <한국대중문화론> 과제물로 제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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