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2>
영화 좋아하신다면서요?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세요?
전 <스파이더맨2>를 정말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아... 네... 그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대학교 3학년 시절 프로젝트 조교로 일하면서 만난 대학원 선배와 나눈 대화다.
어지러운 책상에서 한참을 각자 일을 하다 잠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당시 개봉했던 영화이야기를 서로 열심히 떠들다 각자 제일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나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다들 나에게 어떤 영화가 좋은지 추천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뚝 끊겼다. 마치 망치로 누군가 주변을 때려 큰 소리가 난 것처럼 정적이 꽤 긴 시간 흘렀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순간은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영화를 꽤나 본 사람들은 <스파이더맨2>에 담긴 정서를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가끔씩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먼저 영화를 추천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누군가 재차 물어보면 그때서야 몇 편의 영화를 추천하곤 했다. 그저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말이었고, 한편으론 그 영화가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간의 경험상 상대방은 나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별로 이해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맨2>는 그저 그런 히어로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에겐 나의 대학시절을, 20대를 지탱시켜 준 유일한 영화였다. 왜 히어로 영화냐고. 너무 유치하지 않냐고. 그 안에 뭐 대단한 인생이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엔 사랑이 있고, 아직 미완성의 인간이 겪은 감정적 파고가 담겨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적 동요나 파고를 온전히 다 느끼지 못하듯이 이 영화 안의 주인공의 감정들도 완전히 이해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 안에 담긴 미완의 순간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의 감정들이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대학교 시절, 누구나 그렇듯 나는 미완의 인간이었다. 지방의 대학교로 가게 되면서 생전처음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독립된 생활을 해야 했고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적극적으로 사교활동도 해야 했다. 당연히 내 마음엔 처음 맞는 자유로부터 느껴지는 해방감이 있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조그마한 방 한 칸의 자취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나서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하고 어울려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은 불확실성의 세상이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 두려운 곳. 그 모든 것을 만나면서 내가 잘못하는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자유를 누렸지만,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는 못했다.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서 그 울타리 너머로 팔을 뻗었지만 완전히 나를 끄집어내지 않은 채 그저 팔만 허우적대는 모양이 그 당시 나의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술자리와 모임에 참석했지만 왠지 겉도는 느낌이었고 늘 외로웠다. 이성적으로 좋아하던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의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앉아서 술잔을 기울였고 취한채로 자취방에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당연히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면서 2년을 보냈고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다. 그 모든 게 마음 한 구석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난 그 시간 내내 내가 만든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 채 군대에 갔다. 군대는 내가 만든 울타리를 통째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던지게 만들었다.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2년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2004년 6월. 학교에 복학해 적응하고 있을 무렵, <스파이더맨2>를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주인공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선한 의도로 자신이 얻은 초능력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것을 사용하다 개인적인 목표나 관계를 잃게 될 위기를 맞았다. 피터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내성적이다. 주변에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과 해리(제임스 프랑코)라는 좋은 친구가 그의 옆에 늘 있었다. 하지만 피터는 스파이더맨을 하면서 그 친구들과의 관계도 망가질 위기를 맞는다. 이런 그의 고민은 자신이 하고 있는 선한 의도의 활동이 개인적인 관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피터는 계속 고민한다. 스파이더맨을 계속해야 할지를... 그리고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자신이 사랑하는 메리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해리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진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자체에 무척이나 동질감을 느꼈다. 그 당시의 나도 내 마음속 나의 진짜 모습을 전혀 꺼내어 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피터 앞에 놓인 불확실성이 나에게도 똑같이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DVD가 출시된 이후, 구입해 수없이 이 영화를 다시 봤다. 특히나 외로움을 느낄 때나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때 이 영화를 계속 돌려봤다. 피터가 마지막에 결국 자신을 메리에게 드러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은 나에게 큰 위안을 줬다. 나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위로. 내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이라도 주변에 드러낸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 그러니까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드러낸 이후 메리 제인 왓슨은 피터 파커에게 달려간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맺으며 영화가 끝이 난다.
영화 속 피터 파커는 혼자 고민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절망한다.
난 원하는 걸 갖지 못할 운명인가? 필요한 것도? 난 무엇을 해야 하지?
그가 느낀 두려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때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와 주변의 모든 관계를 삼켜버리는 의무감 때문에 떠오르는 감정이다. 그는, 아니 나는 계속 자신에게 물었다. 진짜 나를 드러내도 되나?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거야?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 나를 조금씩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2>를 수도 없이 보면서, 주변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위안을 얻었다. 비로소 사랑을 이루어내고 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나도 그렇게 나 자체로 인정받는 모습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스파이더맨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고민하는 피터의 모습보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자신의 진짜 성향을 드러내지 못하는 피터 파커의 고민에 더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 영화 속 피터가 자신만의 성장을 이루어낸 것처럼.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나 자신의 감정을 다잡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나를 주변에 드러내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그 이후 꽤 많은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가 나왔지만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영화는 바로 <스파이더맨2>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스파이더맨2>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이야기하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누군가 이 영화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본다면,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성장했다고. 내가 위안을 받았던 영화라고. 영화 속 피터 파커가 느꼈던 고민들을 나도 똑같이 했다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다고.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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