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나와 동생은 그 당시 한참 인기가 있었던 가수 패닉의 앨범을 참 좋아했다. 특히나 동생은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첫 앨범을 반복해서 듣곤 했다.
어느 날 듣고 있기만 하던 어느 순간, 우연히 패닉의 콘서트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로 어딘가.
둘 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너무 그 콘서트에 가고 싶었다.
둘이 한참을 말없이 고민하다가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한 번 가볼까?
그렇게 우리는 어느 주말을 택해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어떤 것이 멋있는 옷인지, 어떤 식으로 꾸며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때.
나와 동생은 대학로에 간다는 설레는 마음을 느끼면서 머리에 젤을 바르고 그나마 멋져 보이는 옷을 골라 입었다. 너무나 기분 좋게 웃는 얼굴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집을 나와 대학로로 향했다.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착한 대학로...
그런데 공연도 처음, 대학로도 처음 가는 우리들에겐 티켓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안내인은 티켓 박스에 가서 표를 사 오면 된다고 했지만
나와 동생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공연에 들어가려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그냥....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가진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둘 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괜히 동생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
괜히 오자고 해서 이게 뭐야!
시간만 버렸잖아.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도착해서 동생은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잡가 버렸다.
그 후 며칠 동안 동생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그 마음. 내가 상처 줬던 마음. 그 마음이 오랜 시간 동안. 아니 나의 평생의 시간에 걸쳐 마음속에 짐으로 남으리란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동생과 연년생이었던 나는 중고등할교 시절에는 무척이나 사이좋게 지냈다. 같이 공을 차고,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오락실에 가서 놀았다. 가장 친한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보낸 동생은 나에겐 너무나 귀엽고 소중한 존재였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간 동생의 동그란 머리가 너무 귀여워서 '둥그르'라는 별명을 만들어 계속 부를 정도로 무척이나 귀여워했었다. 둘 다 말이 많은 성향은 아니었고 조금은 소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둘이 같이 무언가를 할 때면 그나마 덜 부담스러웠고 재미있는 일들도 같이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도 어린 나이라서 좀 더 가까이 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를 가고 각자의 삶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아마도 성인이 되면서 서로의 관점이 달라지고 성향도 달라졌기 때문에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과의 시간이 어색해지고 동생과의 연락도 뜸해졌다. 둘 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거의 남남처럼 되어버렸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참 좋아했다. 이 영화가 형제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형인 진태가 동생인 진석이 함께 6.25 전쟁에 끌려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145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동안 진태가 자신의 동생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숨 죽이며 바라보았다. 둘 중에 한 명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이 진태에게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무엇보다 동생을 아꼈던 형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진태의 상황에 나 자신을 대입시켰다. 그 위험한 순간들에 뛰어들면서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진태. 나라면 그렇게 동생을 위해 뛸 수 있었을까.
이 영화를 꽤 여러 번 관람했다. 마침 군대에 가있었던 동생이 춘천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동생과 함께 같이 한 번 더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금 보면 조금은 조악해 보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과잉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태의 희생은 가슴을 울린다. 동생은 그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뚝뚝한 공대 남자였던 동생이 그 영화의 후반부를 보고 감동을 받았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이야기조차 나누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아마도 그때부터 동생의 생각이 어떨지 몰라 불안했던 것 같다. 동생이 재미없다고 할까 봐, 공감하지 못할까 봐.
동생과 나는 취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미국 드라마를 같이 보고, 많은 영화를 같이 봤지만 나는 좀 더 관대한 평가를 하는 편이었고, 동생은 점점 시니컬하고 비판적으로 영화를 평가했다. 삶의 태도도 무척이나 달라졌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게 뭔지는 상대의 삶에 대해 세세히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점점 교류는 없어졌고, 가족이라는 끈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지만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든 현재의 상황이 되었다.
형,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조금 후에 눈뜨면 우리 집 안방이고 난 아침 먹으면서 형한테 얘기할 거야.... 정말 진짜 같은 이상한 꿈을 꿨다고... 우린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해
가끔은 이게 꿈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 동생과 좀 더 친했더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한 두 가지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더라면...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생각은.. 바로 맨 처음 이야기했던 패닉 콘서트를 보러 갔던 날에 동생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다. 어른이 되고 10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후회로 남아있는 순간이다. 내 수치스러운 마음을 동생한테 전가했던, 그 순간만큼은 나쁜 형이 되었던 그때.
비록 영화처럼 전쟁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지만 인생의 한가운데 우리는 멀어졌다. 가끔 문자로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단답형 답변이 오간다. 내 마음속엔 여전히 귀여운 동생의 모습이 남아있다. 내가 동생을 키운 것도 아닌데, 마치 멀어진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이렇게 멀어질 관계,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떤 고민이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동생은 동생의 삶을 살고 있고, 잘 버텨내고 있다. 무척이나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꽤나 성격 있는 어른이 된 동생은 조금은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늘 내 마음속의 동생은 귀여운 존재일 것 같다. 꽤나 딱딱해 보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예전에 귀엽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왠지 내가 한 잘못 때문에 동생이 더 시니컬 해진 건 아닌지 후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동생의 삶도 결국 동생이 선택한 것이라는 걸 안다. 영화 속 진태가 진석을 위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오해로 인해 북으로 간 것 모두가 어쩔 수 없는 그때의 상황 때문이었다. 아마도 동생도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경험하고 나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 건 아닐까.
오다가다 인사는 하게 된다. 가끔은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시 살갑게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이런 저련 이야기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서로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고 평소에 잘 만나지 않을 뿐이다. 나와 동생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그 거리가 멀어졌을 뿐이다.
여전히 동생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종종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용한 수다를 떠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 귀여운 모습이 남아있는 내 동생. 지금은 그저 멀리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 밖에는 없다. 이런 거리감이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자책하게 되는 건 나의 후회 때문이겠지. 자연스러운 후회의 감정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 더욱더 짙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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