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Feb 16. 2024

가장 행복했던 순간(사랑)

<어바웃 타임>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가서 일에 집중한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마무리되어 6시에 사무실을 나와 북적이는 지하철에 몸을 던진다.

집에 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를 재운다.

그리고 잠깐의 내 시간.  그 이후 잠을 자야 할 시간이 금방 찾아온다.

그렇게 일상은 계속 반복된다.

그 평범한 일상은 겉으로 보기에 그저 그런 아무 감정 없는 하루하루 인 것 같지만,

나 자신은 무수한 생각들을 하면서 보낸다.

평범한 일상 중간중간에 가끔씩 생각한다.


만약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

나는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사실 너무 많아서 내가 던진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른 순간은 조용한 신혼집에서 아내와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이다.

조용한 아침,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1회용 티백에 말린 찻잎을 넣는다.

다 끓은 물을 티백이 담긴 주전자에 붓고, 3분 정도 있다가 차가 우러난 주전자를 작은 찻잔에 따른다.

조용히 상대방의 잔까지 채운 후 약간 식기를 기다린다.

조금 기다린 후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신다.

그렇게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 굳이 대화가 없더라도 각자 할 일을 하면서 마시는 차 한 잔.


그 순간이 처음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순간을 제외하고 조금 극적인 순간을 떠올려보면 바로 이때가 생각한다.


 




결혼은 내게 큰 숙제였다. 여러 번의 연애에 실패하고 도대체 무엇을 바꿔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이 조금 없다 보니 더욱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조급했다. 빨리 결혼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있던 30대 중반의 나를 생각하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결혼이라는 것에 매달렸는지 지금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결혼을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나마 서로 합의하에 결혼을 할 수 있는 상대였고 큰 문제없이

결혼이라는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결혼식 준비는 순조로웠다. 큰 의견 충돌도 없었고 스튜디오 촬영과 웨딩드레스도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결혼식장이었지만 그 결혼식장도 그 당시엔 좋다고 느꼈다. 그게 사랑의 힘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좋아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순조로운 시간들이었다. 뭐든지 잘 될 것 같았고, 우리 앞에 장애물은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그런 것이었다. 이렇게 잘 돼도 괜찮은 걸까. 왜 이렇게 아무 문제가 없지?


사실 결혼 준비가 완전히 되어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금전적으로 생각보다 모은 돈이 많지 않았지만, 각자 모은 돈을 오픈하고 그 금액 안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이상하리만큼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없었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순간이 만들어지기 직전이었다. 신혼집을 구할 때도, 답례품을 준비할 때도, 청첩장을 만들 때도 문제가 없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무척 기분 좋게 일어나 준비를 했다. 신부 화장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섰고 아내는 드레스를, 나는 턱시도를 입고 식을 준비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 장을 찾아줬고, 직접 축가까지 부르면서 우리의 결혼식을 무척이나 즐겁게 보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나와 아내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 속 팀(도널 글리슨)과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의 결혼식 순간처럼 행복한 순간이었다. 영화 속에서 야외 결혼 행사를 할 때 엄청나게 비가 내린다. 그리고 팀의 아버지(빌 나이)의 축하 메시지 연설도 여러 번 반복된다. 팀은 좀 더 완벽한 결혼식을 위해 여러 번 시간을 되돌리지만 늘 결과는 비슷하다. 한쪽을 해결하면 다른 쪽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실수의 순간 속의 행복을 즐긴다. 팀과 메리가 활짝 웃는 모습. 그 밝은 모습에서 그들의 행복이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좋은 예식장은 아니었다. 행사에서 실수도 많았다. 음식이나 다른 부분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안 좋은 점들은 결혼식 당시의 행복에 묻혔다. 어쩌면 가장 행복했을 그 순간의 감정이, 사랑의 감정이 안 좋은 감정들을, 안 좋은 것들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 그래서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날, 그 순간으로 돌아가보고 싶다.



영화 속 팀이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난 멋진 여행을 하고 있다. 그 행복했던 결혼식을 보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아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종종 결혼식의 순간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가족 간의 어려움도 찾아오고 일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예전처럼 행복한 순간들이 덜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순간, 결혼하던 순간, 여행 갔던 순간... 과거의 여러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종종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시간이 진짜 내가 있는 시간이니까.  사랑이 충만했던 순간. 그 순간이 현재의 내가 되는데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시간으로 자꾸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때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현재를 여행하고 있는, 아니 멋진 현재를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로서 좀 더 멋진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과거보단 지금 여행하고 있는 현재라는 순간을 좀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