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배웠다.
마르크스, 뒤르켐, 막스베버 같은 고전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배우면서도
나 자신이 사회에 대한 고민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교 선배, 동기, 후배들과 얼큰하게 닭갈비에 소주를 마시다
사회적인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넌 지금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것 같냐
글쎄 난 그렇게 관심이 없는데, 그냥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
아냐 그 사람이 지금 남북문제 신경 쓰느라 경제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 그래도 경제 상황은 나아지고 있는 거 아니야?
너는 이렇게 사회 돌아가는 걸 모르냐. 너도 이런저런 뉴스도 좀 보고 지지할 정당하나는 만들어 봐.
이야기 자체가 겉돌았다.
한 사람이 그 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나였다.
난 사회학을 배우면서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위에 참여하는 친구들을 봐도,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봐도
별 생각이 없었다.
아직 사회를 덜 배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어떤 쪽을 더 지지할 수도 없었던 때였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술자리에서 누군가 정치적인 이슈를 던져도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사회는 왜 별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라는 생각이었다.
큰 세력이나 이론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햐야하는 상황이 이어졌으니까.
그 상황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사회는 계속 변화해 왔다. 내가 성장하면서 지내온 몇 십 년의 과정에서도 한국 사회는 계속 바뀌어 왔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기까지 주변에서는 어느 한쪽을 택하라고 이야기해 왔다. 마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하나를 빨리 택하라는 것처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처럼. 이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택해서 운영되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 체제 아래서 자라났다. 당연히 그 체제는 맞는 것으로 순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체제를 선택할 권한이 애초에 있지 않았다.
하나 둘여러 가지 이론을 배워나가면서 나의 생각을 만들어갔지만 일단 내가 사는 체제에 순응해서 살아가야 했다. 이게 맞는 것이고 그 사회 안에서 좀 더 나은 방향을, 좀 더 나은 정치 단체를 선택해야 했다. 근데 이게 너무 어렵지 않나? 물론 모든 걸 빠르게 캐치해 영민하게 자신이 선호하는, 맞는다고 생각하는 정당이나 정치단체를 찾을 수도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상향의 사회를 머릿속에 그리며 빠르게 그런 집단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30대 후반에서야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특정 단체를 지지한다고 해서 당장에 그것이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척이나 지루하고 끊임없는 과정이 지속된다. 그래서 정치는 늘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국의 거대한 양 정당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가 맞다고 주장한다. 그걸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아 진다. 진보와 보수. 역시나 두 가지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건 없을까. 그 두 가지만 사회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걸까.
영화 <설국열차>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열차 맨 앞에서 열차의 모든 것을 조종하고 통치하는 윌포드(애드 해리스)에게 반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꼬리칸에서 생활했던 커티스는 그야말로 하층민 중의 하층민이었다. 영화 내내 커티스는 앞으로 나아간다. 열차의 앞으로 갈수록 커티스의 계급적 위치도 계속 상승한다. 마침내 윌포드를 만나서 이야기하지만 그 둘의 이야기는 왠지 공허해 보인다. 커티스의 목적은 애초에 뭐였던가. 그리고 윌포드의 목적은 애초에 뭐였더라. 결국에 설국열차라는 그 시스템을 유지시키면서 모두가 잘 살고자 하는 게 목적 아니었던가. 그 둘이 다른 건 뭔가. 윌포드의 방법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문을 열고 싶었다. 이런 문이 아니라.... 이쪽 문을 여는 거야. 이 바깥으로 나가는 문 말이야.
영화 내내 커티스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문만을 바라보고 돌진했다. 윌포드의 시스템이 망가지거나, 커티스의 혁명이 실패하거나. 사람들은 당연히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궁민수는 다른 문을 봤다. 모두가 문을 열고 싶어 했지만 그 문은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어쩌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문.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문.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발상의 전환. 제3의 길.
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후, 제3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봤다. 그들의 말은 처음에는 그럴듯했지만 결국에는 누군가는 커티스의 길을 걷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윌포드의 길을 걸었다. 한국은 모든 정치세력이 비슷비슷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가 커티스이고 누가 윌포드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좀 더 나아 보이는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남궁민수가 열고 싶어 했던 문은 현실에 없는 걸까?
아마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문이리라. 그 문이 언젠가는 발견되리라 믿는다. 한국은 온갖 잡탕밥 같은 정치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가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이미 갈 때까지 가 모든 것이 고도화된 이 사회에서 정치는 여전히 낡았다. 인간의 본성이 낡은 것일까. 아니면 발전하고 있는데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일까.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제3의 문이 정말 있다면 그 문을 열고 싶다. 몇 십 년 동안 앞으로 나아가고 또 방어해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그 속에 있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을 찾고 싶어 진다. 그런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내가 꿈꾸는 사회 변화의 탈출구는 현재의 체제들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돈이라는 것의 노예가 되어 있다. 이미 만들어진 사회 체제는 수많은 부패와 빈부격차를 만들어냈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에도 부패한 사람은 있고, 자본을 축적한 사람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결국 현재의 모든 체제들이 모두를 위한 사회는 아니란 이야기다. 별로 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공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적은 현대 사회. 물론 지금은 하나의 정당을 택해 지지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당장 무언갈 해결할 수 있는 답은 되지 못한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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