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Mar 08. 2024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적일까 (고민)

-<다크나이트>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2008년엔 주변의 대학원 선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주로 사회통계를 배우고 같이 공부했던 그들에겐 숫자가 꽤나 중요한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숫자는 중요하다.

조사를 통해 나온 통계를 바탕으로 여러 해석을 덧붙이고

또 사회에 대한 분석을 해나갔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던 어느 날, 선배와 나눴던 이야기가 있다.


이거 샘플도 적당히 큰 거 같은데 결과가 좀 이상하지 않아?

네 선배, 제가 보기엔 그런대로 설명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늘 이런 거 보면 왜 100% 는 없을까 묻게 되지 않아?

음.. 근데 100% 인건 세상에 없잖아요. 조사 데이터도 그렇고요. 그냥 많고 적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 우리는 숫자를 보면서 많은 쪽의 의견을 선택해서 그것을 해석하잖아. 그러면 낮은 쪽 의견들이나 그쪽을 택한 사람들은 소외되는 건 아닐까.

엇,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요. 그러고 보니 모든 데이터의 설명을 높은 쪽만 선택해서 그거에 대한 근거나 설명을 찾아보려 애썼던 것 같네요.

그러니까. 숫자로 이렇게 해석하는 게 한 편으로는 이성적인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한쪽만 보고 설명하려 하는 건 아닐까. 자꾸 높은 것만 보려 하는 본능이 해석에 자꾸 개입되는 것 같아.


늘 높은 데이터 결과만 해석하려 했던 나에겐 꽤나 머리를 때리는 대화였다.

과연 나는 낮은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이성적으로 본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도 이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두 개의 의견이 있다면 다수결로 혹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 높은 의견이 무엇인지를 보고 그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다.

선택을 적게 받은 의견도 살펴는 보지만 본능적으로 세세하게 살피게 되지 않는다.

최근의 사회는 점점 다수의 의견만 선택적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만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말 이성적인 걸까.






요즘은 신문을 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정보는 모두 인터넷에 있고, 뉴스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보게 된다. 여러 신문사를 돌아다니면 보면 좋겠지만 그렇게 공들여서 정보를 얻는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저 쉽게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내용을 위주로 보게 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보를 접하고 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보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도 격차가 생긴 것이다.


이미 우리는 여러 격차가 이미 여러 부분에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사회가 이성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소득이나 자산 격차도 계속 커지고 있고, 위에서 말했던 정보에 대한 격차도 계속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의견들이 점점 극단적으로 벌어져간다. 한쪽을 챙겨주면 다른 쪽에서 반발하고, 둘 다 챙겨주자니 챙겨주는 양이 적어진다. 어떤 방향을 택해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여기에서 혼란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무리 정확해도 모두를 챙겨줄 순 없다. 하지만 격차를 줄이려면 그런 이성적인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계 데이터를 해석할 땐 높은 의견을 더 강조했고, 심지어 낮은 의견의 데이터들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의견을 살펴볼 정도의 이성적인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리서치 회사에 취업을 해서 많은 마케팅 프로젝트 보고서를 쓰면서 또 한 번 느꼈다. 모든 해석을 이성적으로 하는 건 아니구나. 원하는 결과에 맞추어 데이터를 찾아내고 해석을 그럴듯하게 해야만 했다. 그래야 원하는 대로 결정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그럼 이 모든 게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커(히스 레저)의 모든 행위들은 일종의 심리 실험이나 사회 실험처럼 보였다. 특히나 그가 두 개의 배에 폭탄을 설치하고 내 폭탄의 타이머를 멈추면 상대방 배가 터지게 만든 데스게임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영화는 분명히 사회의 혼란과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이 등장해 그  혼란을 줄여보려 하지만 배트맨 자체도 사회의 틀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범법자다. 그래서 배트맨이 행사하는 폭력과 조커의 폭력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래도 배트맨은 사회가 이성적이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조커는 반대다.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커는 계속 그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 모두가 악함을 가지고  있다고, 누구든 돌변할 수 있다고. 그래서 긍정의 대표적인 인물인 하비 덴트(아론 에크 하트)를 악당으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엔 이성보단 감성적인 붕괴가 큰 몫을 차지하긴 했지만 조커의 말이 점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등장한 두 개의 배에서 행해진 일종의 사회 실험은 인상적이었다. 한쪽은 일반 시민들이 탔고, 다른 쪽 배에는 사형수를 비롯한 범죄자들이 탔다. 만약 한쪽만 살려야 한다면, 어느 쪽 배를 살려야 할까. 여론조사를 해보면 당연히 일반 시민 쪽이 높을 것이다. 범죄자들은 사회를 혼란시키고 망가뜨린다고 생각하니까. 통계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결정 당사자가 되면 선택을 못한다. 일반 시민들은 범죄자들의 배를 터뜨리지 못한다. 범죄자들도 일반 시민의 배를 터뜨리지 못한다. 이건 이성적인 선택일까, 감성적인 선택일까.


만약 이 선택을 정치 집단이나 정부에서 했으면 어땠을까. 그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범죄자들의 배를 터뜨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다수의 의견이 그런 선택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럼 범죄자들은 그렇게 죽여도 되는 걸까. 그건 이성적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방식이 아닐까. 현재 사회에는 이런 폭력이 만연한 듯한 느낌이 든다. 비록 조커가 현실에선 없지만 우리는 다수의 결정으로 인해 희생하거나 피해받는 사람들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좋은 사회라면 이성적인 판단하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도 챙길 수 있어야 한다.



조커는 배 폭파 실험이 실패한 후 배트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광기는 가속도와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빨라지고 멈출 수 없게 되거든.   




이성적인 판단은 이상하게도 광기를 만든다. 여기에 어떤 의도나 감정적인 판단이 들어갔을 때, 그 광기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저 대사를 했을 때, 조커는 이미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영웅에서 악의 화신이 된 하비 덴트를 그가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커의 그 행위가 이성적인 판단아래서 나온 결과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가 한 말을 완전히 아니라고 거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낸 광기도 점점 가속도가 붙는 건 아닐까. 요즘 뉴스나 여러 정보들을 접하면서 보이는 건, 다수의 통계나 의견들이다. 그런 것들이 사회를 만들어간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SNS 상의 사진과 정보들도 긍정적이고 성공한 이미지들 뿐이다. 인간의 본성이겠거니 하지만 이성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점 어렵고 비이성적으로만 가고 있는 걸까? 개별 사람들은 그래도 완전히 비이성적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 조커의 실험이 실패했듯이 무의식 중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좀 더 따뜻한 방향으로. 그런데 그런 방향의 결정을 사회 시스템이 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역사적으로 사회가 이성적인 결정만을 하지는 않았다. 여러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은 무척 이성적인 결정을 하기 쉬운 것 같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모두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모두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이성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 모두는 하비 덴트처럼 악당과 영웅 사이에 있다. 어쩌면 동전의 앞뒤처럼 아주 작은 차이가 그것을 나누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여전히 통계 수치를 보고 다루는 사람으로서, 다수가 아닌 의견들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비슷할 것이고, 그런 이유로 사회 체계에도 비슷한 고민들이 묻어있을 것이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나아가고자 하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알게 될 뿐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