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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를 떠날 때 느낄 모든 감정 (슬픔)

-<인터스텔라>

by 레빗구미 Mar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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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카톡이 하나 왔다.

직장 동료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알림.

부고 안내 알림의 링크를 클릭해 장소와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누가와 가야 할지, 언제 가는 게 좋을지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물었다.


아빠 오늘 회사가요?

응 오늘 회사 가는 날이야. 미팅이 있어.

그래? 그럼 늦어?

오늘 좀 늦을 거 같아. 같이 일했었던 아빠 동료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네. 장례식장에 다녀와야 할 거 같아.

그래? 왜 돌아가셨어요?

조금 아팠는데, 갑자기 악화되어서... 그랬데

아.. 그럼 아빠도 나중에 죽는 거야?

그럼. 아빠도 언젠가는 죽겠지? 근데 한참 지나고 나서야. 너 어른되고도 한참 있다가~

죽지 마. 나 슬프단 말이야. 눈물 날 거 같아.

괜찮아~ 아빠 지금 옆에 있잖아~


아이는 이미 죽음이라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는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이와의 대화를 뒤로하고 사무실에 나왔다 장례식장에 갔다.

돌아간 분에게 인사를 하고,

남은 분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장례식장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그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앉아있다.






모든 인간은 어쩌면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태어난 이상 숨을 쉬고 또 살아가야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내 의지도 아닌데 일단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노는 걸 알게 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가면서 혼자 살아내려 노력한다. 그때까지는 주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부모님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아마도 인간만큼 부모의 영향이 큰 동물은 없을 것이다. 주변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금방 죽음의 길로 내몰릴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약한 걸까.


하지만 꼬물꼬물 아이의 단계를 지나 성장할수록 부모에게서 독립해 나간다. 여느 동물처럼. 부모와 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작은 존재가 어느덧 성장해 이별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이별은 독립이라고 불린다. 한참 어른이 된 이후에나 그런 시기가 찾아왔지만 그건 완전한 이별은 아니다. 내가 완전하 이별을 겪은 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완전 시골에 살고 계셨던 할머니의 장례식은 완전히 전통적인 장례식이었다. 여러 전통적인 절차를 거쳐 땅속에 관을 묻는 과정까지. 그 이후 더 이상 할머니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그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후 다른 가족들의 장례를 몇 차례 겪으면서 진짜 이별을 알게 되었다. 그 감정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건 어른이 되고 그런 이별을 여러 번 겪은 이후였다.


지금 나의 아이는 죽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까. 맨 처음 대화에서처럼 아이는 그걸 다시 못 만나는 이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아빠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날,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날, 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날. 아이는 그 말을 하면 그 상황을 떠올리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감정적으로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아이에게 그 상황이 아직 멀리 있는 것이라는 걸 여러 번 강조한다. 언젠가 찾아올 일이지만, 아직은 그걸 느끼지 않아도 될 이별.


브런치 글 이미지 1


영화 <인터스텔라>에 더 마음이 갔던 건, 과학적으로 정확한 고증이라거나, 압도적인 화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아빠와 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머피(맥켄지 포이/제시카 차스테인)는 어린 시절 아직 아빠(매튜 매커너히)와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 아빠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어린 머피는 화내고 짜증 내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빠가 떠난 이후에도 그렇게 이별의 고통을 맞이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볼 수 없을지 모르는... 그 상황은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해야 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겪어내고 성장한 머피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하루하루를 넘길 뿐이다. 그 긴 시간을 그저 덤덤히...


그럼 아빠의 고통은 어땠을까. 사실 각자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기 때문에 아빠는 나이가 덜 먹었고, 머피는 아빠의 나이가 되었다. 30대의 아빠가 동영상 속 30대의 머피를 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다. 아빠 쿠퍼의 기분은 어땠을까. 다른 무엇보다 영상 속에서 무표정하게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응시하는 장면에선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화면 속 아빠와 같이. 딸이 지나온 대부분의 삶을 같이 보내지 못했던 아빠.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보지 못한 아빠. 그리고 언제 볼지 모르는,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딸의 모습. 딸이 얼마나 그리웠을지, 그 마음이 모두 나에게 와닿았다. 내 마음 깊숙이.


영화 속에는 백발노인이 된 머피와 30대의 아빠 쿠퍼가 만나는 장면이 있다. 딸은 아빠와의 이별을 다 극복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냈다. 하지만 아빠 쿠퍼는 이제야 그 이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우주의 장난으로 시간이 뒤바뀐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쿠퍼는 안심한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도 안심한다. 딸은 아빠 없이도 잘 살아냈으니까.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냈으니까. 아마도 머피가 잘 살아내지 못했더라면 쿠퍼는 남은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갔을까.


쿠퍼와 함께 우주로 떠난 아멜리아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는 못하지만 믿어보기는 하자고요.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것이다. 아멜리아의 말이 맞다. 두근두근하는 사랑이 아니다. 내가 아이를 볼 때 느끼는 그 감정. 그 감정은 어느 시간에서도, 어떤 장소에서도 똑같다. 마치 영화 속 아빠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딸에게 메시지를 줬던 것처럼, 그 사랑은 어디에서도 전달된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딸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딸을 잃었을 때의 감정을 이 영화에서 그대로 느꼈다. 아빠 쿠퍼가 딸이 남긴 영상을 보다가 더 이상 영상을 이어지지 않을 때,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에서 뭔가 잃어버린 감정을 읽었다. 그리고... 딸의 시간으로 꽤나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남긴 하나의 영상. 30대의 딸이 화면에 등장한다. 딸의 상실감을 읽고, 다시 딸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상실감을 쿠퍼의 얼굴에서 읽었다. 그렇게 나도 딸을 잃은 그 슬픔을 그대로 느낀다. 그렇게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슬픔, 안타까움, 상실감, 분노, 우울.... 딸과 이별할 때 내가 느낄 감정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그 단어들 만으로 내 감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건, 어떠면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딸과의 이별을, 어쨌든 참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화 속 딸과 아빠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렇게 생각한다. 서로의 시간을 놓쳤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서로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어디에 있든, 아이가 어디에 있든 늘 마음속에 사랑이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아직 어리광을 피우고 장난치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하루하루 본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비록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이별의 슬픔을 경험했지만, 지금 내가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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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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