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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결정을 바라보는 시선

by 레빗구미


레빗구미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뉴스 속 지도는 실시간으로 변하고, 회의실의 조명은 언제나 새것이지만, 그 안의 결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끝에서 멈춥니다. 기술이 앞서가도 판단은 늘 제자리, 확신보다 의심이 먼저 도착하는 시대. 그래서 가끔은 묻게 됩니다. 우리는 더 안전해진 걸까요, 아니면 단지 두려움을 더 정교하게 포장하고 있는 걸까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인물들은 미확인 신호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제로 다크 서티〉의 요원은 끝없는 ‘아마도’ 속에서 한 사람을 좇고, 〈허트 로커〉의 병사는 폭발 직전의 고요 속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세 영화는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모두 같은 질문을 품습니다. “결정은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가.” 혹은, “그 파괴를 견디는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회의실에서 데이터를 읽고,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서 신념을 더듬습니다. 누가 옳다고,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들이 붙드는 건 확신이 아니라 감당입니다. 버튼을 누르기 전의 침묵, 결재 도장을 찍기 전의 떨림, 전선을 자르기 전의 숨. 세 영화는 그 찰나의 인간적인 망설임을 세밀하게 기록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망설임의 얼굴들을 함께 보려 합니다. 정치인과 요원과 병사—서로 다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는 세 사람의 떨림. 그들은 정의를 위해 움직이지만, 정작 정의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나아갑니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마음, 그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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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네번째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1987>, <브이 포 밴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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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불확실성 속에서 —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아침의 공기는 늘 비슷하다. 전철역에 모여 선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휴대폰을 스크롤하고, 뉴스의 헤드라인은 어제와 거의 다르지 않다. 세계는 여전히 굴러가는 듯 보이고, 우리의 평온도 그 흐름 위에서 유효한 듯하다. 하지만 그 평온이 정말 ‘평화’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어디선가 누군가의 손끝에서, 그 평온을 무너뜨릴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회의의 온도는, 몇 도쯤일까.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온도의 세계를 그린다. 평범한 아침, 레이더에 포착된 미확인 미사일. 19분 동안, 권력의 방 안에서는 수십 개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반격할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사체’는 그저 한 점의 데이터로만 존재하고, 그 데이터 위에서 사람들은 온 나라의 운명을 저울질한다. 영화는 묻는다. ‘결정’이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정보의 신뢰인가, 공포의 속도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능인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이상할 만큼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은 정교해졌지만, 원인은 언제든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라는 질문 앞에서 세상은 여전히 무력하다. 감지된 숫자와 그래프는 냉정하지만, 그 안에 숨은 불확실성은 언제나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권력은, 매 순간 두려움 속에서 계산한다. 공격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공격이라면? 기다리면 늦을 수도 있지만, 먼저 쏘면 전쟁이 시작된다. 그 잔혹한 ‘양자택일’의 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할 길을 잃는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화면은 차갑고,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다. 회의실의 조명은 푸른빛으로 인물들의 얼굴을 씻어내리고, 영상통화 속 인물들의 표정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대통령은 손을 떨며 결재서류를 붙잡고, 군 지휘관은 침착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명령을 정리한다. 영화는 영웅을 찍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작은 흔들림’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그 미세한 떨림이야말로 재앙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알고 있다.


가장 끔찍한 건 원인이 불확실할 때다. 그 불확실성은 분노를 불태우기엔 부족하고, 잠재우기엔 너무 크다. 정부는 대중의 공포를 관리해야 한다. 책임의 화살을 어디로 돌릴지 결정해야 한다.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들지 못하면,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렇게 누군가는 성급히 희생양을 찾아낸다. 그 이름 하나가 발표되는 순간, 전쟁의 방향이 정해진다. 영화는 그 장면을 ‘결정의 순간’이 아니라 ‘패배의 시작’처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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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FJ - 영화에 대한 리뷰보다는 영화안에 담긴 감정들에 대해 씁니다. 영화의 긍정적인 부분을 전달하려 합니다. 세계최초 영화 감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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