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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꽃 Jan 29. 2024

다 고맙습니다

"원장님은 안 계시나요?"

 “네. 오늘 휴가 내셨어요.”

한 손에 케이크를 든 남자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어요.

“원장님이 오늘 생신이라서 잠시 들렀거든요. 전화를 안 받으시길래 바쁘셔서 그런 줄 알고 그냥 왔더니... 이것 좀 전해 주시겠어요?” 머쓱해하며 케이크를 전하고 돌아섰어요.   


  10여 년간 근무했던 유치원의 원장님은 일찍 출근하셔서 늘 늦게까지 일하셨으나, 당신의 생일날만은 휴가를 내시거나 저녁이 지나서야 출근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생일이니까 쉬고 싶으신가 했지요. 그런데 다른 이유가 있었더라고요. 사람들의 축하 방문이 쑥스럽고 못 견디게 불편해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교사들 외의 연락은 안 받으셨어요. 그때는 sns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있지도 않을 때여서 알고 지내는 분들과 제자들이 꽃다발, 선물, 케이크 등을 들고 직접 유치원에 찾아왔지만 만나서 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어떤 사람은 촛불 켠 케이크를 든 채 노래하며 들어오다 주인공은 없고 낯 선 교사와 마주치자 당황해 몸 둘 바를 몰라했어요. 물론 우리 쪽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원장님과 나의 생일이 같은 날이에요. 숨다시피 집에 계시던 원장님과 달리 나는 2~3주 동안 들떠 있었어요.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들을 며칠 동안 고심하며 리스트로 작성했어요. 그렇게 작성한 선물 리스트를 들고 다니며 형편에 맞게 고르라며 선심 쓰듯 하여 선물을 받아 냈죠. 1년에 단 한 번 주인공이 되는 며칠간의 축제 기간을 마음껏 즐겼어요. 선물사 달라고 대 놓고 칭얼댈 수 있었으니까요.


생일마다 밖으로 향하던 나의 감정과 시선이 안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지 여러 해가 지났어요. 실컷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처럼 나의 생각이 내면으로 걸어 들어왔어요. 생일날이 쑥스럽고 불편하다던 원장님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축제로구나 했던 것들이 소란스럽고 번잡스럽게 여겨져요. 이제는 팔순과 칠순을 넘긴 부모님과 내 생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며 여태껏 키워 주고 계심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귀한 행복입니다. 쉰을 넘긴 내가 엄마가 해주시는 생일밥을 먹는다는 것이 엄청난 선물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고 살아요.


태어나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키워 온 수많은 손길들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아침마다 "다녀오겠습니다"와 저녁에 "다녀왔습니다."의 반복이 내가 무사했음의 증거였다는 것을 더 깊게 깨닫는 날이 바로 생일이랍니다. '다녀오겠습니다'와 '다녀왔습니다' 사이에 불쑥불쑥 들고일어난 많은 일들이 나를 다듬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어요. 그러니 삶이 고되었더라도 괜찮아요. 생일을 맞을 때마다 다 괜찮았다고 그저 감사하다고 말해요. 생일은 고요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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