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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l 15. 2023

매실장아찌와 청양고추 다대기


 지난주 이틀간 연수를 받았다. 업무에 대한 연수라 빠질 수 없었다. 새로운 연수는 좋은 에너지를 주지만 연수에서 돌아와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비워둔 업무 공백만큼 일이 쌓인다. 어제는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나의 무료한 일상에 연수는 활력이 되었지만 일상 루틴이 깨지니 힘든 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연수 장소까지 이동시간도 있어서 평소보다 퇴근시간이 늦어졌고 일상 리듬도 깨져 블로그도 소홀하게 되었고 책도 많이 읽지 못했다.


얼마 전 20년 동안 집밥을 먹으며 9억 원을 모았다는 현대판 자린고비 일본 남성의 이야기를 접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자가 아닌 순전히 저축만으로 9억 원을 모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평소 생활비를 최소화해서 자산을 축척했고 달걀도 사치라는 이 남성의 닉네임은 '절대퇴사맨'이다. 매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저녁 식사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가루 뿌린 밥에 계란말이, 매실장아찌 등 간소한 식단으로 생활하는 남성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기사에 달린 댓글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글이 더 많았다. 사실 혼밥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이것저것 많이 차리는 것이 사실 귀찮을 수 있다. 점심은 회사 급식으로 대체하면 되니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간소하게 먹어도 영양과잉 시대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핵심은 매일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20년이라는 세월을 말이다.



절대퇴사맨 트위터 캡처



연수를 듣고 와서 늦은 저녁은 청양고추 다대기만으로 소박하게 해결했다. 얼마 전 아이가 요즘 유행하는 청양고추 다대기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청양고추와 멸치를 넣고 만든 이것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얼음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떠서 적당히 매운 청양고추 다대기 조금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도 없고 밥 한 그릇 순간 뚝딱이다. 남편은 별로라 하지만 나와 딸아이의 최애 반찬으로 등극됐다. 밥을 먹다 보니 절대퇴사맨의 매실장아찌가 생각났다. 남들은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모으면 인생에 남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에게 그런 생활은 고되지 않고 행복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쌓여가는 통장 잔고가 다른 기름진 고기반찬보다 더 좋았으리라. 퇴사를 꿈꾸며 매일 차리는 소박한 밥상이 드디어 그의 꿈을 곧 실현시켜 줄 것 같다.


절대퇴사맨처럼 나도 퇴사를 꿈꾼다. 퇴직 시기는 5년 내로 잡고 있다. 주식은 아직 마이너스이지만 저축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 공제회와 퇴직금이 합쳐 목표를 달성하면 바로 퇴사각이다. 원래 생각은 이 돈으로 국민연금이 나오는 65세까지 내 용돈으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우선 퇴사하기 전 월급 외 부수입을 100만 원이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100만 원으로 어떻게 사냐고 할 것 같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한 달에 용돈 100만 원은 훌륭하다. 아마 다 쓰지 못할 것 같다. 우선 월세 나오는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면 월 50만 원이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50만 원을 만들기 위해 궁리 중이다. 지금은 8시간 주 40시간을 근무하지만 퇴직하면 4시간만 일하고 싶다. 티모시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는 책을 읽은 순간부터 꿈꾸던 일이다. 퇴직 후 4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 일이 무엇이 될지 나도 궁금하다. 


티비에 나오는 배우들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89세의 나이에도 연극 무대에 오르는 이순재선생님을 보면 존경스럽다. 의사들도 그렇다. 동네 의원을 하시는 의사 선생님은 70대 할아버지이시다. 직장인은 60세가 되면 퇴사해야 하지만 전문직은 퇴사 안 해도 된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도 4시간만 일하는 전문직을 꿈꾼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멋진 60대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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