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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Sep 13. 2023

뭇국을 끓이며

집밥 테라피


유독 마음이 시끄러운 날들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몸이 축 처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졌다.  소파에 10분쯤 누워있다 일어나야지 한다는 것이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잠들기 전에는 환했는데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져서 어둑해졌다. 얼른 일어나 불을 밝히고 부엌으로 간다. 


힘들면 그냥 쉬어도 되는데 해도 지기도 전에 잠을 잔 것이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고 저녁 준비를 한다. 마음속이 맑음이 아니라 "흐림"인 날은 뜨끈한 국물이나 매콤한 것이 당긴다.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냉장고에 있는 무를 꺼낸다. 흙이 묻어있는 무를 감자칼로 슥슥 껍질을 벗겨낸다. 하얗게 단장된 무를 보니 내 마음의 꺼풀을 벗겨낸 것 마냥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한번 씻어낸 무를 도마에 올려 뭉텅 한 덩이를 잘라내 나박나박하게 썰어낸다. 냄비에 썰어진 무를 담고 물을 채우고 불을 올린다. 


무가 끓을 동안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하느라 시간이 없어 싱크대에 놓고 나간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무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냉동실에 잠자던 소고기를 넣고 다시 푹 끓인다. 나는 무만 넣고 끓여도 좋은데 식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소고기를 조금 넣어야 한다. 소고기를 넣고 국이 끓어오르면 양파와 마늘을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색이 뽀얗게 올라오면 소금으로 간하고 후추도 뿌려준다.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게 끓여 낼까 하다 그냥 말갛게 먹기로 한다. 


밥과 뭇국, 그리고 김치로 조촐한 저녁을 먹는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맛있게 먹어주니 다행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뭇국이 달다. 지친 하루에 입에서 쓴맛이 났었는데 단맛이 한껏 올라온 뜨끈한 뭇국을 몇 숟가락 떠먹으니 속에 얹혀있던 응어리가 풀어져 떠내려간 느낌이다. 뭇국에 밥 반 공기를 말아 김치를 올려 먹으니 환상의 조합이다. 경직됐던 얼굴에도 밥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꽁꽁 싸매져 있던 마음의 응어리가 형체도 없이 풀어져 버렸다.


나이가 들어도 제일 힘든 것이 마음 씀씀이이다. 마음속이 어지러울 때는 더 잘 먹어야 한다. 속이 허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속이 채워져야 마음도 채워지리라. 테라피가 난무하는 시대, 그중 제일은 집밥 테라피라 생각한다.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으며 하루 있었던 일을 풀어내는 시간들은 치유의 시간이다. 오로지 내편이라고 생각되는 식구 앞에서 말을 하면서 치유되고, 따뜻함이 담긴 말을 들으며 치유되는 시간들. 오늘도 아이의 종알거리는 학교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담긴 국물을 떠먹으며 마음의 온기를 채운다. 


직장 일을 하면서 집밥을 하는 것은 어느 날은 고된 노동으로 다가오는 날도 있다. 하지만 집에서 부엌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공간이다. 한여름밤 반짝이는 별처럼 행복의 조각들을 선물해 준 공간이다. 시금치를 무치면 쪼르르 달려와 자기가 간을 봐주겠다고 조그만 입을 내밀던 작은 아이, 무엇이든 엄마가 한 음식이면 다 좋다고 오케이를 외치는 큰 아이, 고기반찬이 없으면 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프라이팬을 꺼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오는 남편. 오랜 시간 끓이고 데치고 볶고 무치던 날들의 시간들이 이 부엌에 소금처럼, 설탕처럼 고스란히 쌓여있다. 오늘도 부엌을 닦으며 나의 소중한 공간임을 되새긴다. 앞으로도 밥을 지으며 새롭게 쏟아질 행복의 찰나들을 생각하며 고단한 하루를 씽크대 물속에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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