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와 친구들

by 산호


얼마 전 체리가 손목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것을 봤다. 사실 아이들이 손목에 밴드를 붙이고 있거나 붕대를 감고 있으면 가슴이 철렁한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대했다. 친구들과 행복나눔실에 놀러 와도 폰만 하는 우리 체리는 아직 마스크를 쓰고 거기에 후드 티 모자까지 쓰고 다닌다. 다른 친구들은 가을 밤톨 털듯 지난 주말에 시내 갔던 일을 털어놓거나 어제 밤새 폰 하다 아침에 늦잠 자서 지각할 뻔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우리 체리는 항상 눈은 폰에 고정하고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듣는다. 시끄럽게 재잘대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왔다 함께 사라지는 아이들 중 한 명이다. 그저 말 없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던 손목의 밴드를 생각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말한다.

"샘, 제 좀 상담해 주세요?"

"왜? 무슨 일 있어?"

"제 눈썹 칼이 잘 드나 하고 손목에 갖다 댔다가 진짜 피났어요. 눈썹 칼도 칼인데 정말 바보예요."


대수롭지 않게 아이는 체리의 이야기를 꺼내놨고 나 또한 친구의 말을 곧이 믿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음날 회의로 아이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아이는 집에서 자해를 시도했고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가장 재잘거리길 좋아해야 하는 13살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 넓고 감당이 안 되는 곳이 되었다. 마음에 줄 곳 없는 세상,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로 중학교 1학년 아이는 고독과 그리고 자신 자신과 맞서 싸우고 있다. 오직 아이는 폰 안의 세상이 안전하다 믿고 있다.


몇 년 전 초등학교 근무할 당시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전학 온 6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우리의 단골손님 주희가 데리고온 전학생은 성격도 좋았고 또래보다 키고 크고 성숙했다. 매일 주희랑 행복나눔실을 다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전학생은 곧 겨울인데도 반팔 티를 입고 왔고 친구와 보드게임을 하던 그 아이의 손목을 보게 되었다. 손목에 남겨진 희미한 상처들이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태연하게 아이를 보내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하루였다. 아이는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고 있었고 나는 전학생보다 주희가 더 걱정이 되었다. 주희의 가정환경이 평범하지 않기에 속된 말로 그 전학생에게 물들까 봐 주희를 걱정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씩씩한 우리 주희는 중학교 올라가더니 다이어트해서 살도 빼고 남친도 생겨서 지금은 행복한 고딩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 아이들이 농담으로 자퇴하고 싶다고는 말을 한다. 그러면 나는,

"중학생은 자퇴 안돼, 그냥 급식 먹으러 다녀."

"급식 맛없어요."

"급식 싫어요. 그러면 샘 얼굴 보러 오세요."

애교가 섞인 혀 짧은 목소리로 말하면 아이들은

"우웩!"

하고 다들 내뺀다.


아이들이 중학교 3년 동안은 학교에 잘 나오길 바란다. 그래도 학교에 나온다는 것은 학교에 기댈 곳이 한곳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행복나눔실이든, 위클래스든, 도서관이든, 급식소든 어디든 아이들이 숨 쉴 곳이 있다면 그 아이는 학교에 온다. '아니 띄엄띄엄 나와도 좋으니 제발 학교에 오자.'


체리의 손목은 잘 아물고 있다. 그 일 이후로 잘 보이지 않더니 이번 주에는 다시 친구들과 다시 행복나눔실에 오고 있다. 체리가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있음에 감사하다. 전학생에게 주희가 있었듯이 말이다. 해맑은 친구들 숲에서 서서히 함께 물들어 체리도 자신의 빛깔을 간직한 체리로 잘 여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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