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냥이앓이!

by 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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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아이들이 유리창에 우르르 모여 무언가 구경 중이다. 한 아이가 나무에 고양이가 올라가 있다고 말해줬다. 궁금해서 창가로 가니 정말로 높다란 나무 위에 갈색 고양이가 앉아있다. 3층에서 내려다보니 나무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모르니 어떻게 높은 나무까지 올라가게 됐는지 참 신기했다. 하지만 이 고양이 양반은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한 남학생이 고양이를 구출하려고 나무를 기어 올라가 보았지만 곧 포기하고 내려온다.


나무는 학교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개잎갈나무로 거의 3층 높이에 아랫부분에는 나뭇가지가 없어 마땅히 밟고 올라갈 곳이 없다. 10분의 쉬는 시간은 금방 끝나고 아이들은 제각각 교실로 흩어졌다. 곧 점심시간이라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고양이가 안쓰러워 1층으로 내려가 봤다. 나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 표정은 뭐랄까 사람에게 지쳤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내버려 두라는 듯한 사춘기 아이들의 표정이었다. 맹랑해 보였지만 금세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 초등학교 입구에 길고양이 밥 주는 곳이 있다. 작은 나무 박스에 밥그릇이 있어 누군가 매일 고양이 밥을 주러 오는 것 같다. 그곳을 지나가다 보면 아이들이 고양이 간식을 손에 꼭 쥐고 고양이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 또한 고양이가 올까 하고 기다려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이 바빠 정말 아주 잠깐 기다리다 그냥 포기해 버렸다. 아마도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는 그곳에서 키워지는 고양이일 거라 생각 들었다.


나무 위에 둥지를 튼 고양이를 두고 점심을 먹고 운동장도 산책을 하였다. 하지만 고양이 생각이 떠나지 않아 다시 그 문제의 나무로 돌아왔다. 아이들 때문인지 좀 더 높이 올라가 자리 잡은 고양이는 자고 있었다. 그 높은 곳에서 낮잠이라니! 역시 귀엽고 시크한 냥이 녀석. 점심시간이 끝나 낮잠을 자게 놔두고 행복나눔실로 올라갔다. 1교시부터 올라가 있다는 녀석은 5교시가 시작되어도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이 녀석 때문에 전교생이 냥이앓이 중이다. 공부가 될 리 없다. 화장실에 다녀가는 학생도 창문 너머 고양이가 잘 있는지 살피고, 맘씨 착한 어떤 여학생은 고양이가 폭신한 담요를 보면 내려올까 생각을 했는지 나무 주변에 담요 2개를 널찍이 깔아 두었다. 그리고 캣타워처럼 보이는 체육용 사다리도 누군가 가져도 놓았다. 하지만 우리의 냥이님은 꿈쩍도 않는다.


1학년은 모두 평창으로 수련활동을 떠나 평소보다 조용한 학교에 방문한 고양이 손님은 인기 최고였다. 눈수술로 병원 예약이 되어있어서 수련활동을 갈 수 없었던 빈이가 도서관 수업이 일찍 끝났다고 우리 교실에 들렀다. 빈이가 루미큐브를 꺼내며 한판 뜨자고 신청했다. 보드게임을 하지만 우리 둘 다 머릿속에는 고양이 생각뿐이다. 비가 올 듯 날은 흐리고 이렇게 비라도 내리면 고양이가 내려올까, 얼른 보드게임을 끝내고 창가로 다가가 둘이 나란히 나무 위 고양이를 살펴본다.


그때 어디선가 사다리를 들고 한 아저씨가 등장하신다. 사다리를 일자로 크게 펴고 '죽죽' 늘리더니 나무에 '척' 사다리를 기대놓는다. 남학생들에게 사다리를 잘 붙잡으라 하고 사다리를 거침없이 올라가신다. 드디어 고양이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고양이가 다른 나뭇가지로 도망친다. 다시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다람쥐 마냥 그 높은 나무를 정주행 하며 쏜살같이 내려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두가 무서워서 못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외면하고 고양이는 싱겁게 도망쳐버린 것이다. 고양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시크하게 가버렸지만 무사히 고양이를 구조해 준 아저씨에게 빈이와 나는 감사의 박수를 쳐드렸다.


2학기가 시작되고 중간고사도 얼마 안 남은 학교생활에 고양이 해프닝은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다. 고양이가 무사히 떠나가고 얼마 안 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 덩그러니 펼쳐진 담요를 잘 개어 체육 사다리에 올려놓고 비에 젖지 않게 학교 안으로 들여다 놓았다. 담요 안에 살포시 들어있던 사랑도 함께 담아서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이지만 고양이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었다. 그 온기가 언젠가 사람을 위하는 따뜻한 손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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