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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n 04. 2024

여름의 문턱에서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 완벽한 날들_메리 올리버>






이웃님 블로그에 올라온 시가 하루종일 마음을 붙잡았다. "그동안 배운 걸 잊는데 여름을 다 보낸다"라는 문장 하나가 뇌리에 꼭 박혔다. 이런 멋진 문장을 소유한 시인이 부럽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나의 문장을 가지게 될 날이 빨리 오길 소원한다.


다가올 여름, 나는 무엇을 잊기 위해 여름을 다 보낼까. 그리고 다시 가을이 되면 여름날의 그 무엇을 그리워하며 다시 일상에 서게 될 것인가.


채우기만 했던 지난 시간들, 이제 비우고 잊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가득히 아니라 좀 남겨놓을 줄 아는 여유를 가질 나이다.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는 야생 굴뚝새들과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는 꽃들을 기억하자. 오랜만에 꺼내든 시집이 다시금 나를 붙들고 철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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