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서관에서 파란색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만났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작은 손바닥 책으로 175페이지의 소설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처음으로 쓴 소설책이었다. 물론 예전에 읽었던 책일 것이다. 다시 새롭게 출판된 듯 보였고 내용이 잘 생각나질 않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2시간 넘게 한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심플하게 쓰고자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아을 정도로 심플하게. 심플한 언어를 쌓아,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한 문장을 쌓아, 결과적으로 심플하지 않은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건너뛰고 다시 읽은 책의 느낌은 새로웠다.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글이었다. 소설 속 20대 주인공의 모습에 나의 20대 젊은 날이 오버랩되었다. 그리워하기엔 오랜 시간이 지나 말 그대로 빛바랜 추억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젊음,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혼자 애태우던 나만의 여름날들이 있었기에 책장을 덮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와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물론 책은 있었다. 1973년의 핀볼과 함께 엮은 책으로 1996년 문학사상사에서 출판된 책이었다. 무려 30년 가까이 된 책인데 그 세월 동안 버려지지 않은 책이다. 책이 귀해서가 아니라 젊은 날의 시간이 담겨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어 아직도 책장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고이 모셔져 있는 책 중 한 권이다.
벚꽃아래 선 내 모습이 슬프다
점점 작아지는 자아
난 무엇이 되고 있는가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
나를 이길 수 있다면
이 끈적거리는 게으름을 떨쳐낼 수 있다면
1996년 4월
연필로 밑줄 그은 페이지 뒤로 흘려 쓴 낙서가 왠지 짠하게 다가온다. 96년 내 나이 24살. 힘을 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은 게을러도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