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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엔 김치콩나물국

by 산호

우리 집 둘째는 2024년 마지막날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였다. 졸업식엔 자장면이지, 하며 점심으로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먹고 거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지나면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인생 첫 술약속을 하고 밤 11시 40분 정확하게 집을 나섰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주점에서 1차를 하고 코노에서 2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고 다시 인쌩맥주에서 다른 친구들과 합석하여 2차를 하였다고 한다. 엄마가 몹시 걱정하는 것을 알기에 새벽 6시에 해돋이를 보러 갈 거라고 전화로 상황을 설명해 왔다. 새벽에 받은 전화 목소리는 생각보다 생생했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은 듯해서 안심이 되었다.


아이 전화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기는 힘들 것 같아 속초해수욕장으로 일출을 보러 갔다. 며칠 전의 사고로 일출행사가 없는 정적인 해변에 늘어선 사람행렬에 조용히 나도 끼어들었다. 차라리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보지 못했다면 더 좋았을 걸. 구름 위로 떠오른 해는 유난히 붉게 보였다.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새해 소원을 조용히 빌어보았다.


일출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먼저 들어와 씻고 있었다. 그리곤 내리 하루종일 잠을 자더랬다. 다음날 출근한 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병원에 간다고 했다. 술병 아니냐고, 아픈 아이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아이는 복도까지 사람들로 꽉 찬 병원에서 2시간을 내리 기다려 독감 검사를 하였고, 결국 독감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많이 아프면 수액을 놔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8만 원짜리 수액을 맞고 왔단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머리에 패치를 붙이고 누워 앓고 있었다. 비몽사몽 하면서도 간호사선생님이 독감검사에 수액까지 10만 원이 넘는 병원비 영수증을 주며 실비청구하라고 했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싼 수액을 갓 스무 살 된 아이에게 권한 것은 너무 한 것 아니야, 얘기했더니 그래도 수액을 맞아서 좀 나은 것 같다는 아이에 말에 입을 다물고 얼른 주방으로 가서 콩나물을 꺼내 저녁 준비를 하였다.


나는 어린 시절 감기를 늘 달고 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일 먹기 싫은 것이 약이다. 약을 잘 못 먹으니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고 엄마는 회초리까지 준비해서 약을 먹였지만 목구멍에서 그 하얀 알약이 넘어가지 않으니 별수 없었다. 그냥 앓을 때까지 앓다 보면 감기가 나은 것 같다. 특히 마이신이라는 녀석은 입에 물고 있다 보면 그 전선 껍데기 같은 것이 불어 터져서 못 먹고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 하시면도 내가 감기에 걸리면 김치콩나물국을 끓이셨다. 김치콩나물국을 한 그릇 먹고 나면 땀이 나면서 몸이 데워지고 그렇게 잠들면 감기가 견디기 한결 수월해졌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나도 식구들이 감기에 걸리면 김치콩나물국을 끓인다. 짤게 썰은 김치와 콩나물을 넣고 푹 끓인다. 김치 국물을 한국자 떠 넣어도 좋다. 멸치를 넣어 육수를 내기고 한다. 오늘은 냉동실에서 있던 소고기를 조금 넣었다. 마늘도 한 숟갈 넣고 파도 쫑쫑 썰어 놓는다. 뭉근히 끓여 소고기가 부드러워지면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썰어놓은 파도 넣어 한소끔 더 끓여낸다.


아이가 좋아하는 갓 지은 하얀 쌀밥에 김치콩나물국을 떠서 아이방에 가져다주었다. 아이는 밥을 반쯤 먹고 국은 국물을 조금 먹고는 못 먹겠다고 하였다. 내가 국이라도 한 그릇 다 먹으라고 채근하니 마지못해 몇 숟가락 더 먹어주었다. 약을 먹는 것을 보고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 방에 넣어 주었다. 다른 식구들이 독감에 걸리면 안 된다고 재잘재잘 말 많은 아이를 방에 격리시켜 놓으니 집안이 조용하다. 거실에 앉아 요즘 씨름하고 있는 뜨개질 뭉치를 손에 들었다. 이런 날 눈이라도 오면 더 운치 있을 것인데. 눈은 오지 않고 쌩쌩 칼바람이 베란다 창을 때린다. 이 밤이 지나면 아이의 감기가 똑 떨어지길 바래본다.





오늘을 다독이는 집밥테라피 2편은 이번 글로 마무리합니다. 곧 다른 시리즈로 돌아올게요. 그동안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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