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었다. 10년 전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에어컨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분명 지구가 뜨거워진 것이 분명하다. 오늘도 퇴근하자마자 샤워 먼저 하고 부엌에 들어선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토마토비빔밥! 요즘 읽고 있는 초식마녀님의 <비건한 미식가> 책에서 발견한 신박한 비빔밥이다.
비빔밥 하면 둘째 아이 임신했을 때가 생각난다. 시댁이 식당을 해서 임신해서도 식당에 나가 일을 도와드렸었다. 식당은 여느 가정집처럼 제때에 식사를 할 수 없다. 손님이 한갓진 오후 3시는 넘어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3시까지 기다리기엔 배속의 아이가 너무 배고파하기에 1시쯤 넘으면 냉면대접에 감자조림이랑 고구마순을 넣고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었다. 어느 날은 메추리알장조림에 멸치도 넣고 코다리조림도 발라 넣고 간장에 비벼먹기도 했다. 손님이 있는 시간이라 식당주방에 서서 먹기에 비빔밥만큼 손쉬운 것은 없었다. 새댁이 혼자서 손님들 있는 식당에 앉아 밥 먹기에는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언제든 그릇 한 개로 후다닥 먹고 치우기에도 간편한 비빔밥이 제격이었다. 며칠 먹으면 질릴 것 같았지만 임신 내내 비빔밥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질리게 먹었어도 지금도 비빔밥을 좋아한다.
비건한 미식가를 읽으면서 토마토를 비빔밥에 넣으면 무슨 맛일까 궁금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마침 토마토도 있으니 해 먹기로 했다. 책에서는 오직 토마토만 들어갔는데 집에 다른 야채들이 있어서 다양하게 넣어보았다. 우선 토마토와 오이, 양파를 잘게 썰고 아침에 쪄놓았던 감자도 하나 썰어 넣었다. 그리고 단백질 보충용으로 계란 프라이 대신 두부 반모를 들기름에 구웠다.
밥을 푸려고 보니 밥통에 밥이 없다. 아뿔싸! 대신 전에 다이어트한다고 사두었던 현미귀리 곤약밥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 그릇에 담았다. 오늘의 주인공 토마토를 밥 위에 담고 오이와 양파, 감자를 살짝 올렸다. 아이가 불닭볶음면 소스 사면서 함께 사다 놓은 배홍동 소스를 넣고 들기름도 한 스푼 넣었다. 완성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불사용을 최소화해서 요리를 하는 것이 좋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씻고 나와 15분 만에 준비된 요리이다. 두부만 아니면 10분 컷도 가능할 듯하다. 토마토가 들어간 비빔밥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그야말로 또 해 먹고 싶은 맛이다. 아니, 토마토 비빔밥을 사랑할 것 같다. 초식마녀님이 왜 그리 토마토비빔밥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집에 있는 토마토가 숙성되어 물렁한 것이 씹지 않아도 흐물흐물 넘어간다. 고소하게 부쳐낸 두부는 말잇못! 오이와 양파는 아삭하게 씹히는 것이 건강한 맛이다. 삶은 감자가 아까워 한 톨 넣은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쫄깃한 식감으로 비빔밥의 풍미를 올려주었다.
ps.
책에 의하면 토마토는 지구 생태계에 부담을 적게 주는 종 중하나라고 한다. '물 발자국'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는데 제품 생산부터 소비, 폐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물이 얼마나 소비되었는지 나타내는 지표라고 한다. 물 발자국이 적을수록 환경에 부담을 덜 준단다.채식은 평균적으로 육식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물 발자국을 남긴다고 하니 이 또한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킬로의 토마토를 키우기 위해서는 214리터의 물이 필요하지만 닭고기는 4,335리터, 돼지고기는 5,988리터, 소고기는 1만 5,415리터가 든다고 한다. 고기 대신 토마토를 먹는 일은 지구 생태계를 위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 나의 채식이 지구를 티끌만큼이라도 살리는 일이라니 기쁜 마음으로 한그릇 순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