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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Aug 30. 2024

아무리 바빠도 감자전

지난 7월 초 지인분께서 감자를 한 박스 주셨다. 다른 선물보다 먹거리를 선물로 받으면 너무 감사하다. 지인의 텃밭을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손수 일구신 땅에 감자모종을 심고 가꾸고 장마 전 감자를 캤을 손길이 떠올라 더 감사하다.


감자를 받자마자 생각난 것은 바로 감자전이었다. 굵은 것으로 골라 식구들 감자전을 해줄 생각에 신이 났었다. 하지만 막상 하려니 감자 깎고 갈아서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 좀 번거로워 쉬는 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동안 감자박스에서 감자를 꺼내 반찬을 할 때도 큰 것은 감자전하려고 따로 모아 두고 작은 것들부터 골라 먹었다. 그렇게 감자는 찐 감자로, 매콤한 감자조림으로, 소시지와 함께 감자채볶음으로, 구수한 감자된장찌개로 거듭났다.


오늘 감자를 보관한 박스를 열어보니 열 알 정도 남아있다. 남은 감자들은 굵은 것으로 이제는 감자전을 해야 때가 온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오늘은 감자전을 해야지 싶었다. 10개는 많을 것 같아 그중 제일 실한 것으로 6개를 골라 이쁘게 깎았다. 3인 식구라 그래도 5장은 부쳐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부엌 서랍에서 강판을 꺼냈다. 초록색 몸통에 하얀 채판이 달린 플라스틱 강판은 신혼 초 시어머님이 선물해 주신 거다. 2002년 결혼하고 이듬해 여름, 감자전 해 먹으려면 강판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장에서 사다 주셨다. 나의 결혼 생활과 함께 해온 20년 넘게 묵은 강판이다. 여름철에 꺼내 두어 번 쓰고 가끔 갈비양념으로 양파와 배를 갈 때 쓰고 넣어두니 강산이 두 번 변해도 아직 쓸만하다. 앞으로도 20년은 거뜬할 것 같다.


마알간 감자를 한알씩 강판에 간다. 감자색이 곱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서로 갈아준다고 내가 갈고 앉아있을 틈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크니 이제야 내가 감자를 갈고 있다. 6개를 다 갈고 식구들이 올 때까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저녁에 작은아이가 먼저 와서 감자전을 부칠 준비를 했다. 나무주걱을 살짝 대고 그릇을 기울여 물을 쪼옥 따라버린다. 이래야 전을 부칠 때 기름이 덜 튄다. 애호박을 반 개 정도 채 썰어 같이 넣고 소금 간을 한다. 그리고 아래 가라앉은 녹말까지 저어서 잘 섞어 둔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감자전을 부친다. 오랜만 집에 기름냄새가 동한다. 약한 불로 두고 얼른 간장양념을 만든다. 양념이라고 해야 간장에 깨소금, 들기름만 넣으면 된다. 아이는 "바삭하게" 부쳐달라고 부탁한다. 노릇노릇하게 한 장 부쳐내니 맛나게 먹는다. 항상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라 늘 먹거리에 신경이 쓰는 편인데 오늘은 아이 입맛에도 합격인가 보다.


남은 감자는 짜장면 만들 때 좀 쓰고 감자밥을 한 번 해 먹으면 다 소요될 것 같다. 처음 감자를 받을 때는 이걸 어찌 다 먹나 싶었는데 틈틈이 먹으니 그새 다 먹게 되었다. 감자를 알뜰히 먹는 사이 여름이 성큼성큼 가고 있다. 아직 가지전을 못해 먹였는데 마음이 바쁘다. 내일은 가지전을 부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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