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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reici Jan 12. 2022

[histoire 1] 노란색

코로나 때문에 뒤숭숭한 하루하루지만 날씨도 점점 좋아져가는 것 같고, 이사하던 즈음 했던 네일이 많이 길어서 퇴근 후에 새로 네일을 받으러 갔다. 어떤 네일을 할지 고민하다가 # 봄네일 을 검색한 후 그나마 마음에 드는 조합을 들고 갔다가 그 사진하고는 다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네일을 받고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손을 씼는데, 마침 수건이 노란색이고, 옆에 있던 말려놓은 프리지아도 노란색, 그 밑에 양치컵도 노란색 그리고 화장실 바로 앞에 보이는 냉장고에 붙은 미미매거진 포스터도 노란색. 우리집에 노란색의 무언가가 이렇게 많았던가.

사진에 나온 저 옷이 아마도 처음 산 노란색 옷 인 것 같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고 종종 잘 입고 다녔다. 저 옷을 입고 나간 날 가끔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듣곤했다. 그리고 저 옷은 몇개 안되는 좋아하는 옷 중 하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또 노란색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2017년 크리스마스. 두 번째로 파리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계속 집에만 있다가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외출을 해볼까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마주한 꽃집에 미모사를 팔기에, 미모사와 그 옆에 있던 하얀꽃까지 해서 한 다발을 달라고 했었다. 선물할거 아니고 그냥 집에 둘꺼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갑자기 거기 통에 있던 미모사와 햐안 꽃을 그냥 다 집어서 종이에 싸주는게 아닌가. 오후 4시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유럽에서는 1년 중 꽤 큰 연휴라 일찌감치 휴가를 떠난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문 닫은 가게들도 많았던 날이라 문이 열린 꽃집이 신기하긴 했었지만. 약간 문을 닫으려고 준비 중인 찰나에 내가 아무래도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덕분에 예상치 못한 꽃다발을 한웅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 물론 Joyeux Noël 과 Bonne fêtes 도 빼놓지 않고 들었고. 그렇게 한 웅큼의 꽃다발을 안고 와서 하루 정도는 그냥 뭉텅이째 패트병에 담아놨다가, 다음 날 조금씩 소분해서 책상 위에, 주방 한켠에, 화장실에, 옷장 옆에, 그리고 침대 옆 벽에 나눠 붙여놓았더니 한 동안 집이 노랑노랑했었다. (그래도 꽃이 남아서 사무실에도 들고가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놨었다.)

그러고 보니 노란색은, 꽃이랑 관련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옛날 옛적에 친구가 패드를 처음 샀을 땐가, 좋아하는 글귀를 적어달라고 보내줬던 글에도 노란 꽃이 들어갔었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오늘도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꽃을 샀습니다. 꽃을 그다지 아름다워하지 않았는데 당신을 만나고 부터 좋아졌습니다. 우리 약속이 있는 날에는 항상 꽃이 사고 싶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니 더 보고싶습니다. 얼른 갈게요. 오늘 꽃이 유독 노랗습니다.
- 비밀편지 박근호 



그 뒤로 노란꽃과 함께 한 일은 늘 행복했다. 뜬금없이 로즈데이여서 친구한테 빨간 장미를 사주고 친구가 자기도 장미를 사주겠다고 했을 때 고른 장미도 노란색,  친구 병문안을 가는 길에 해바라기를 좋아한다고 했던게 생각이 나서 한 송이 샀던 해바라기도 노란색이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조금 슬펐던 졸업식날 유일하게 받은 꽃도 노란 프리지아.




그리고 어제 산 시집도 노란색. 작가님이 트위터에 신간이 나올꺼라고 올린 트윗을 우연히 보았는데, 제목에서 마음이 쿵 햇다.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라는 제목이라니. 한 여름에 파리에서 혼자 집에 앉아서 본 call me by your name에서 티모시의 아빠가 했던 대사처럼. 


Feel something you obviously did


무언가를 주고받았다는 말, 노란색을 떠올리면 같이 떠오를 것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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