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부지런하지 않은 내가, 부지런 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처음 기억나는 얘기는, 파리에서 어느 날 출근해서 어제 뭐했냐는 상사분의 질문에 어제 아침에 장보고 카페도 갔다가 작은 공연하나 봤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부지런하게 산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냥 순간 내가 그만큼 부지런 했던건가?했다. 기분나쁜 얘기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저 스스로가 절대 부지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이므로 의아했달까.
또 종종 듣곤 하는 얘기 중에 하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너가 제일 부지런하다는 얘기이다. 물론 부지런하긴 하다. 좋아하는 공연 하나 보려고 새벽 기차타고 서울가서, 또 간김에 가고싶었던 카페도 가고 서점도 가고, 그러고 공연보고 막차타고 새벽에 다시 부산을 온다던가. 4시 30분 출근인데 굳이 또 새벽에 기차타고 대구에 가서 언니들을 만나고 아점을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2시 기차를 타고 다시 부산에 내려와서 출근을 하고. 또 좋아하는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러 김해에 갔다가 강연도 마지막까지 다 듣고 싸인도 받고 싶어서 끝까지 강연 다 듣고 책에 싸인도 받고 김해에서 부산까지 택시타고 출근을 한다던가. 서울 당일치기는 너무도 많이 했고. (나 무려 파리에서 런던 당일치기도 한 사람! 새벽 다섯시에 일어났음에도 런던에서는 고작 여섯시간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미쳤었다. 정신이 나갔었나봐,,,)
근데 이 모든 일은, 내가 좋아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고싶다는 마음, 좋아하는 언니들과 잠깐이라도 커피 한 잔을 하고싶은 마음, 좋아하는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을 때 듣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친구와 좋아하는 걸 하고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이 저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난 정말 부지런하지 않다. 약속시간도 정말 잘 못지키고, 모든 탈 것은 세상 숨가쁘게 타며, 설거지와 빨래 미루기는 일상. 버려야지 생각하고 무려 포스트잇에 적어놓기까지 한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가 아직도 여전히 냉장고 한 켠에 놓여있기 때문.
부지런하다는 말을 듣기 싫은 건 아니지만 부지런하지 않은데 부지런하다는 얘기를 듣는게 뭔가 기분이 그래서, 그럴 때 마다 조금은 더 부지런해져 볼까 싶다가도 곧 다시 원래대로 게을러지는 나를 보면 정말 원래도 좋아하지 않지만 더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다른 사람들 보다 좋아하는게 많지만 그만큼 좋아하는 건 정-말! 좋아하고 그 외의 것들은 싫어한다. 좋아하지 않는 건 그냥 좋아하지 않는 상태로 두어야 하는데, 싫어한다. 그래야 좀 더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