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사랑, 아닙니다
사랑이라고 포장된 어떤 감정에 대하여
출동#1
센터 출입문이 열리고 어떤 청년이 들어왔다. 급한데 짜증 나는 그런 오묘한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인 누나에게 방금 어떤 문자가 왔다는 것이다. 전 남자 친구가 보낸 자살을 하겠다는 문자. 우리는 출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체 접수]를 통보하고 구급차를 몰고 언급한 주소로 출동했다. 어느 빌라 2층이었다. 경찰도 와 있었다.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안에 요구조자(남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일이다. 공포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요구조자가 있다고 가정했다. 자살을 방금 시도했다면 구조대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장비가 없기 때문에 문을 파괴할 수도 없다. 하지만 2층까지는 사다리를 타고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창문이 잠겨있지 않다면 말이다. 중형펌프차에서 사다리를 내렸다. 사다리를 펼쳐서 2층으로 기댔다. 성큼성큼 2층으로 올라갔다. 발코니에 발을 기대 보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한 사내가 핸드폰줄로 장롱에 목을 매었다.
의식 평가를 하니 자극에 반응(Pain)에 반응했다. 맥박, 호흡이 있었다. 목을 맨 지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급하게 응급실 이송을 하기로 했다.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BST체크를 하려는데 요구조자는 움찔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처치실로 환자를 옮겼다.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신고자인 전 여자 친구의 동생이 응급실에 같이 왔지만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집에 간다고 한다. 무척 짜증 나 보였다.
출동#2
부서진 불상 사진과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받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표시된 주소를 보니 가까운 곳이었다. 불상이라고 해서 절이라 생각했는데 무속인의 집이었다. 작은 개가 짖고 있었다. 사진처럼 불상이 마당에 부서져있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요구조자가 천천히 나왔다. 눈매가 무서웠다. 이런 무속인은 존댓말은 안 한다. 빨리 가라고 당신들 가면 나 30분 있다고 죽어버리겠다고 한다. 내가 죽는다는 데 소방관과 경찰관이 와서 왜 나를 힘들게 하냐면서 빨리 가라고 한다. 우리는 어머니 같은 분이 자살한다는 데 어떻게 가냐면서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사실 소방과 경찰은 각자의 법에 근거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경찰은 경찰 직무집행법 4조에 의해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자를 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 소방도 현장 응급처치 매뉴얼에 보면 자살을 시도하려는 자는 환자의 권리가 없다. 즉 진료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한다. 응급실로 이송하거나 보호자에게 인계를 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30분쯤 지났을까? 여성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다. 그 격해진 감정이 사그라드니 온전한 이성의 언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소방관과 경찰관에게 박카스 하나씩 먹고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나와 같이 살던 남자가 친한 동생과 바람이 났다고 그래서 이 사달이 났다고...
이 두 사람을 자살'시도'로 이끄는 것, 소유욕이 아니었을까? 내 것인데 그것이 달아나버렸으니 자살한다고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1993년도에 개봉된 피아노라는 영화를 보면 사랑을 존재하는 사랑과 소유하는 사랑으로 나눈다. 주인공(여자)을 사랑했던 두 남자 중에 한 남자는 여주인공을 가지려고 했고, 또 한 남자는 주인공을 바라보고 행복해했다. 결국 주인공은 후자를 택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노력해도 떠나가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소유하는 것, 아니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자. 그때 비로소 그녀를 보내줄 수 있다. 그녀가 떠났다고 자살한다고 문자를 보낸다면 치졸한 복수이자 또 다른 폭행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살 암시 문자를 보내도 옛 연인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