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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un 20. 2023

2년

벌써 3년이 시작되었다 

코시국 수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다.  

여행블로거로서 나름 디지털노마드 삶에 성공했다 생각했지만 

코시국은 수많은 여행인플루언서들에게 방콕여행을 선물했다. 

나 역시 방구석에 앉아 작고 소중한 미약한 나의 통장에 귀여운 돈들을 

차곡차곡 깎아먹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코시국. 

결국 우린 제주에서 펜션을 오픈했다.  

아무런 자본금도 없이 그저 이리저리 긁어모은 돈들로 

그렇게 바다 가까운 이도저도 아닌 콘셉트의 펜션을 말이다.  

자쿠지도 없고 그렇다고 갬성이 줄줄 흐르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숙소를 말이다. 




코시국동안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제주 뿐이었다. 

차라리 진작 오픈했으면 코시국성수기 맛이라도 봤을 테다. 

하지만 코시국이 지나고 한참 뒤에야 오픈한 펜션은 

코시국 혜택이라는 것을 맛보기도전에 시국은 점점 안정화되어갔다. 



이제 손님이 조금 오려나 했다. 

이제 안정권인가 싶었다.  

하지만 우리 펜션이 안정이 되는 게 아니라 시국이 안정되며 

하나씩 하나씩 해외를 떠나기 시작했다.  




23년 6월. 

그렇게 벌써 작고 코딱지만 한 숙소의 운영자로 2년이 되었다. 

2년간 매년 5월이면 어김없이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지었다. 

겨울에 꼭 철거해야지 했던 마음과 다르게 미루었던 제비집은 그냥 두고 

왜 올 때마다 그 바로 옆동을 새로 만드는지 제비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돌아올 때 선물을 물어오라던 나의 부탁과 달리 

제비들은 매년 나날이 발전하는 뺀질빼질한 비주얼로 다시 우리 숙소를 찾았다. 

그리고 또 가득 새끼를 놓고 

또 가득 제비똥을 싸질러두었다.  




그사이 객실보다 더 넓은 마당은 여러 번의 잡초와 전쟁을 치렀다. 

늘 칭찬으로 가득했던 후기들 중간중간 

실내는 너무 깔끔하고 좋은데 마당이 좀.. 야외가 정리안 된 느낌이라는 

듣고 싶지 않은 리뷰들이 우리 부부를 괴롭게 한다. 



농약을 사고 잡초를 죽이고 

둘이서 드넓은 마당에 잡초를 뽑고 

또 벌레를 만난다.   

2년이 지나도 벌레를 만나면 아직도 흠칫할 마음이 남았다니. 



1년에 한두 번은 JS 들을 만난다. JS? 우린 그들을 진상 혹은 블랙리스트라 부른다. 

2주년 기념으로 또 한 번의 JS를 만났다. 

그들은 화려한 몸만큼이나 객실 전체를 멋지게 수놓았다. 

식탁의자에 던져둔 화려한 호피무늬 팬티까지 

그들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침대 옆에 나뒹구는 담뱃갑들.

객실 내 금연이지만 고얀 것들 담뱃갑만 던져놔 따지지도 못한다. 

전날 어디를 다녀왔는지 발바닥은 새카매진 흰 양말들. 

이 사람아 이럴 거면 검은 양말을 신게나. 

양말빨래하는 마누라, 엄마 생각은 안 하냐? 




마시던 맥주와 씹던 소시지는 변기 위에 

반쯤 먹다 버린 복숭아는 화장실 입구에. 

입다가 던져둔 건지 빨래하고 던져둔 건지 

잊기는 어려워 보이는 화려한 호피빤스까지. 




코시국기간 해외로 여행을 못 가니 

곳곳의 국내 여행지가 많이 인기를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곳곳의 펜션 사장님들의 

JS 리뷰들이 뉴스를 타고 나오기도 했다. 

역대급 빌런은 물론 뉴스 속 사장님들이 떠안으셨겠지만 

우리 집 빌런들도 제법이다 싶다. 




1년에 한두 번 신고식처럼 만나는 JS 리뷰

오랜만에  JS 스토리에 나의 인별그램이 뜨거웠다.  

고마워해야 하나? 호피 팬티는 그대 선물이던가? 훗.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어디 가서 똑같이 하다 어글리코리안이라 소리 안 듣길 

싸 잡혀서 욕먹는 일 없길 바라본다. 




2년 시간이 참 빠르다. 

그사이 늘어난 건 손에 익어가는 청소기술. 

JS를 보고도 아주 조금 차분해진 마음. 



다시 제주보다는 해외로 떠나고 있지만 

그중에 누군가는 

언젠가 제주를 찾아오겠지. 

그리고 우리 숙소의 매력을 알아주는 이 가 

또 찾아오겠지. 



그나저나 그들은 2일간 도대체 얼마나 먹은 것일까. 

대형 쓰레기가 5 봉지나 나오려면.. 

소화는 다 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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