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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4. 2023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

부부가 함께 일한 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사이좋은 부부로 보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일이 된다. 함께 24시간을 보낸다는 건 누군가에겐 고난의 행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직장동료이자 육아동지, 동거인으로 생활하기도 한다.   교제기간 5년, 결혼생활 15년 차. 그중 24시간을 함께 한 시간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각자 일하던 터전을 함께 하나로 합치고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와 나의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그저 같은 공간의 같은 동료일 뿐 부부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24시간 모든 공기를 함께 마시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수년을 함께 해온 방법이다.  



함께 하는데 왜 부딪히지 않겠는가.  전혀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함께 살고 함께 일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눈감아야 할 것들이 많다.  각자 기준이 다르고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그 수많은 성격과 기준의 차이를 우리는 결혼 전 5년간 치열하게 싸웠다.  제주에 내려와 육체 피로가 과해졌을 때에도 역시나 극단적 단어가 가끔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의 철저한 무시와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며 굳어져 갔다.   



제주에서 펜션을 오픈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서류상 대표는 나지만 진짜 운영 및 관리는 남편이 모두 한다. 나는 그의 직원정도랄까?  아침에 아이 등교를 하고 나면 각자 할 일을 한다.  그는 그만의 공간에서 전자담배와 가족들의 안부, 친구들과 전화통화로 수다를 떨며 아침을 시작하고 그만의 화장실로 간다.  펜션을 운영하지만 여행인플루언서 탈을 쓰고 살고 있는 나는 아이 출근과 동시에 밀린 포스팅과 일들을 체크한다.  그사이 우리는 크게 대화가 필요 없다. 할 말이 생기기 전까지 일부러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외부 CCTV를 확인 후 손님의 동선에 변화가 생긴다 싶을 때 즈음 둘이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신체 움직임이 많은 일이기에 공복 상태로 일하고 그 후 살 빠짐을 선택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밥시간에 예민해지기에 식사는 꼭 챙긴다.  아이가 있어 볼 수 없었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드라마, 영화들을 아침 식사와 함께 즐긴다.   그리고 곧 우리는 우리의 일터로 함께 이동한다.  



한 공간으로 출근이기에 차도 두대가 필요 없다.  내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혼자 화를 삭이고 숨 넘어갈 그 이기에 운전은 더 잘하는 사람이 하기로 한다. 그 덕에 나는 이동 중에 독서시간을 갖는다.  약 30분 거리를 이동하며 한마디를 하지 않는 날도 혹은 30분 내내 이야기를 하며 갈 때도 많다.  한 가지 주제로 둘이 대화할 거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대화는 없다. 물론 혼자 일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인터넷을 보거나 책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어찌 같이 일을 할 수가 있냐고. 싸우지 않냐고.   매일 어찌 같이 그렇게 붙어있을 수 있냐고.  하루종일 지켜보면 알겠지만 24시간 내내 같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하다.  철저하게 분업된 업무 역시나 큰 마찰이 없는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지.   



펜션에 도착하면 철저하게 분업된 사이클로 돌아간다.  차에서 새롭게 빨래한 이불과 수건들을 각자 무게에 맞게 내리고 객실로 들어간다.   장갑을 끼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주방 청소를 시작하는 나와 달리 그의 담당은 침실 청소다.  그는 청소기를 전체적으로 돌리고 침실에 사용한 이불과 베개커버를 싹 다 수거하고 건조되는 동안 그의 전자 담배 타임이 온다.  그가 밖에서 잠시 쉬는 사이  내가 주방일을 끝내면 안방 구석구석 살림과 테이블, 티브이와 소품들을 닦아낸다.   거울을 닦고 구석구석 비품을 정리하는 건 내 몫이다.  쉽게 말해 걸레질하는 곳은 다 내 것.   그가 다시 돌아와 본격 침실 침구 교체가 시작되면 나는 이제 화장실로 간다.   주방에서도 욕실에서도 내내 물소리와 함께 하고  같은 실내지만 다른 곳에서 각자 할 일을 한다. 



현관청소는 먼저 일이 끝난 사람 담당이다.  안타깝게도 진상이 한번 다녀가 집이 대참사로 청소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하지만 그럴 땐 먼저 본인일을 끝낸 사람이 현관청소를 마무리한다.  내 지분일이 끝나면 청소 장비를 챙겨 창고로 가고 그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게 된다. 마법의 봉 다이소의 혁명 만능 돌돌이를 가지고 집안 곳곳을 누빈다.  곳곳에 숨은 머리카락과 잔여물이 있는지 신체 조건중 유일하게 40 넘어도 상태 제일 좋은 눈에 불을 켜며 구석구석 2차 점검에 들어간다. 



일은 항상 마지막 단계에 터진다. 일하는 내내 큰 충돌 없이 지나가지만 마지막 점검 타임에 직원의 치부는 드러난다.  내가 걸레질을 놓쳐 바닥에 무엇인가 묻어있거나 걸레질을 했음에도 머리카락 한올이 남겨져 있다면 그때는 바로 시작된다.  컴플레인을 듣는 건 남편의 몫이기에 남한테 싫은 소리 듣는 게 가장 싫은 그이기에 이런 식으로 해두면 내가 욕먹는다고 한소리 한다.  본격 파이터 타임이다.   나도 열심히 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왜 그의 눈에만 보였던 것인지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받아치지 않는다.  싸움의 원인은 한쪽이 말을 했을 때 한쪽이 그 말에 불쾌감을 표현하고 그런 너는 잘했느냐 따위로 2차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인정한다. 그리고 말한다. 아 그래? 그럼 마무리하고 나와~   혹은 철저하게 쌩. 니야 잔소리를 해라. 나는 갈길 간다.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주변에 펜션 운영하시는 분들을 보니 청소하며 많이 싸운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로 우리처럼 청소 지적에서 사건은 시작되고  열심히 했던 상대는 불쾌해진다. 이미 육체노동으로 피곤도가 올라간 입장 너와 나 모두 힘든 상황이라는 것. 보였기에 잘못한 것이 있기에 지적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 역시나 거기에 함께 한다면 이건 무조건 싸움이다.  그런 걸 알기에 우린 서로의 지적을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혹은 응. 그게 왜 거기 있냐? 나 몰라라 식으로 해결한다.  이걸로 싸워봐야 무의미하다는 걸 알기에.  주로 나는 남편의 잔소리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린다. 그게 지금까지 무탈하게 함께 펜션 청소를 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명이 빠지면 혼자하기엔 그 어려움을 알기에.  투덜거리지만 서로의 감사함을 알기에 혼자 해봐야 득될것이 없다는걸 알기에 차라리 부딪히지 않는게 가장 현명한것이라는걸. 



하지만 늘 남편은 말한다. 

"백번 말하면 머 하니~  맨날 쌩까는데~  "  

그렇게 오늘도 그의 분노만 쌓여가는 걸로.  나는 오늘도 에라 모르겠다. 

팔아프니까 파스나 좀 붙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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