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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Oct 05. 2021

그렇지만, 그럼에도 제주

-제주 살아 부러워요. 저도요

12월 21일 제주에 온 지 꼬박 5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리 오래 제주에 살게 될지.

그리고 그사이 코로나 시대가 창궐하고 이렇게 펜션을 오픈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르지만 우리 인생은 더욱 그러하다.



내려오고 첫해  아들친구네가 놀러 왔다. 아이를 통해 만들어진 인연이지만 동지애만큼은 끈끈했기에

그 애틋함은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날 아이 친구를 껴안고 울었다.  아무 연고지도 없이 내려온 제주가 그저 어색하고 그저 쓸쓸했나 보다.  



타 지역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채로 오롯이 우리 가족만 의지하면 산다는 건 어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해외에 나가 살고 싶었다.  코시국만 아니었다면 외국 어딘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고 그리 살고 싶었다. 그 연습의 마당으로 삼고 내려온 제주인데 익숙해지는 데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돈이 엄청 많아 쇼핑을 펑펑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가끔은 콧구멍 바람도 쐬고 아이 옷 한 벌 정도 사며 아이쇼핑을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제주엔 백화점이 없다.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쇼핑을 할 수도 없다.

그저 마트를 기웃거리며 걸린 것들을 탐방하며 소소한 플렉스를 즐길 뿐.

메이커마다 상점이 따로따로 있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며 과연 몇이나 쇼핑을 하겠는가.

처음엔 진짜 답답했다. 백화점 식품관의 6시 마감 세일도 괜히 그립고  

아이쇼핑만 해도 괜히 백화점이 그리웠다.   하지만 5년쯤 지나니 쇼핑은 육지 갈 때 즐기는 것이며

빈 캐리어를 들고 가 채워오는 게 또 하나의 지혜가 되었다.  자주 쇼핑을 못하고 가끔 육지행에 즐기는

쇼핑의 참맛.  육지에 살 때 주기적으로 옷 하나 사며 낄낄거릴 때와는 사뭇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6시 식품관의 마감세일은 없지만 오일장에서 호떡 사 먹고 시장 맛집을 찾아내는 재미.

제주니까 제주라서 재미있다.






가끔은 차를 타고 부산, 강원도로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  

제주에는 고속도로가 없다. 고속도로가 없으니 휴게소도 없다.  

가끔 육지행에 여행이 더해져 강원도로 부산으로 전국 곳곳을 유랑하며 휴게소를 갈 때 그 설렘.

제주 살아보니 고속도로 휴게소도 핫플레이스였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소떡소떡은 휴게소가 가장 맛있다는 것도 두번세번 느끼게 된다.  






펜션을 오픈하며 더욱 씁쓸했던 건 바로 택배비다.

무게에 따라 값을 정하는 택배일수록 내가 왜 제주에서 이러고 있나 싶더라.

펜션 준비를 하며 가구 배송비 20만 원은 우습다. 배송비만 모아도 아마 소파 하나는 더 샀겠다 싶을 만큼

씁쓸했다.  다양하게 고르는 재미도 없는데 제주라서 배송 안된다는 건 또 왜 그리 많은지.

숯을 주문했다. 전화가 온다. 추가 배송비를 주셔야 한단다.  뭘 사면 담당자와 전화는 꼭 한번 이상

이루어진다.   제주라 배송이 늦고 제주라 배송비는 비싸고..  원하는 날짜에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었던

육지의 삶이 새삼 좋았구나 싶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제주에서 삶이 길어지고 있는 건

언제나 눈부시게 내려오는 선셋과 바다의 윤슬을 만날 때 그 감동이 5년간 계속되며

매번 봐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제주바다는 택배비의 씁쓸함과 고속도로의 소떡소떡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름 때문이다.  갇힌 쇼핑몰에서 티셔츠 한 장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거보다

이 바다 갈까 저 바다 갈까 앉아서 준치에 맥주 한잔 마실 때의 즐거움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펜션을 준비하는 한 달 동안 물건 하나하나 살 때마다 화가 났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고   제주라 배송 자체가 안되기에

아예 마음을 접어야 하는 물건도 생겼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제주에서 최선을 다해 오픈 준비를 했고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고 배워 가는 중이다.  





흰자갈을 주문하고 싶다. 알아보니 또 배송비가 20만 원이란다.

돌 많은 제주에서 돌 사는 것도 실소가 터지는 이 상황에 돌값만큼 배송비를 줘야 하는

제주 삶이 가끔은 어이가 없어 포기를 부르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제주의 삶이 생각보다 좋다.  





도시의 화려함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가끔은 사무치게 그립다.  태풍 때마다 오늘 밤 괜찮겠지?

걱정을 떠안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지  벌써 5년.   아직까지 제주의 삶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제주와 친해져 가는 중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돈 버는 건 똑같이 힘들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도시처럼 똑같이

틀어지고 씹고 씹힌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주는 사계절 감동을 주며 변덕스러운 날씨는 내 마음 못지않지만

이곳에서의 특별함은 깊어져 간다 싶다.   아 제주는 이런 거도 불편하고 저런 것도 불편하고~  

이런 거도 없어!!   아 짜증 나~~~ 하다가도  누군가 제주살아 참 부러워요 라는 말에 스르르

그래. 제주 참 좋지 대답하고 언제까지 제주에 살 거예요?라는 말에 글쎄. 그렇지만 제주에 온걸

후회하지는 않아 라고 대답하는 내 모습이 딱 제주 날씨스럽다.





나 역시  제주는 비싸고 바가지가 심하고 그 돈으로 해외를 가겠어 라고 말했다.

근데 제주 살아보니 제주 구석구석 돌아보니 그건 정말 제주 구석구석을 몰라서 그랬구나 싶다.

비싼 바가지 물가에 비싼 음식값.  학을 때며 미쳤구나 싶은 제주 관광지 물가에

여러 번 놀란다.   이러니 사람들이 외국에 가는 게 낫다고 하지.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제주가 있다는 게 지금 이 시국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외국만큼 저렴한 밥값과 깔끔하면서도 저렴한 숙소.  구석구석 즐길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제주를 마치 다 아는 것 같이 말하지만 제주라는 곳 가까워지기에  아직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할 것 같다.

제주의 매력을 알아가기엔 3박 4일 여행 일정은 짧다. 그저 소개팅 당일만큼 어색하고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결심한다. 살아보니 더 좋은 제주.  

나라도 깨끗하게 숙소를 제공하며 바가지 없는 꿀팁 여행지를 소개하며 살아야겠다며.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제주 사는 동안에는 그래야겠다 싶다.  수만 명의 관광객 중 하나만이라도  짧은 여행기간 동안이라도 제주에 실망하지 않도록  제주의 예쁨을 보여줘야겠다 싶다.  




오늘도 정수리가 타들어 가는 햇살 아래 제주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머리카락 한올 없이

돌돌이질을 해야겠다.   락스 향 그윽 마셔가며 그릇 하나하나 먼지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오늘도 펜션 청소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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