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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01. 2024

그래 이번에는 진짜 가자!

다시 여행을 계획하는 건 쉽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이제 저가항공은 못 타겠다고 갈 거면 비싼 비행기 타야겠단다. 무슨 초딩스러운 발상인가 싶다만 그래 폐소공포증 환자 덕에 김해공항 숙박하고 집에 갔으니 화날 만도 하지. 아빠는 그 이후로도 계속 가지 않는다~ 너희끼리 가라 랩을 이어갔다. 남들은 환갑에 칠순에 형제, 자매 가족 모두 모여 호호랄라 여행만 잘 가던데 어쩜 이렇게 단합이 안 되는 가족이라니. 


사실 단합 안 되기로 소문난 가족이다. 엄마는 내가 어리고 동생이 아기일 때부터 나에게 어린 동생을 맡겨두고 취미생활을 이어가던 사람이다. 고3인 딸에게 술 먹고 늦게 오는 아빠 밥상을 차려주라던 엄마. 야자 끝나고 오는 딸 간식을 내어주지는 못하는 마당에 술 먹고 나보다 더 늦게 오는 아빠 밥상을 차려주라니.  모두가 숨죽이며 산다는 고3 나는 야자를 끝내고 와서 아빠 밥상을 차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친구들과 술 먹기 바쁜 아빠.  각자 개인플레이 하기 바쁜 구성원들에게 단합이라는 건 찾아볼 수 없다.

 서로를 탓하고 서로의 핑계를 대면서 가족이기에 서로가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수밖에 없던 사이. 그래서 같이 있으면 더 불편하고 하물며 전화 통화조차  길게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결혼은 나에게 더욱 허락된 가출이었다. 집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지금까지 이만큼 키워줬으면 됐지라며 보상 심리 가득한 친정엄마. 가족보다는 친구가 먼저고 그저 같이 술 먹는 친구, 후배들이 더 좋은 아빠. 이미 여행을 같이 간다는 것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인플레이어들이 다 같이 여행이라니. 이미 신도 알고 파투 낸 건 아닌지. 시작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기대 안 되는 여행이랄까?


하지만 환갑에 칠순에 다들 산이고 바다고 비행기 타고 떠나는데  동생이 가만있을 리 없다. 비록 진실한 효녀는 아니지만 효녀 코스프레를 해서라도 이번생 덕을 쌓아 다음생 부자 부모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내 동생.  그 아이의 지휘아래 그냥 동의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시간은 내기 마련이고 마음이 있다면 4년까지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었지만,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마음에 엄마·아빠와 해외여행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결국 다시 가보자 결심하기까지 4년

. 내 아이와 내 남편과는 틈만 나면 가는 여행이지만 친정부모님과 여행은 위대하고 큰 결심이 필요했다.  그게 뭐라고 싶지만 첫 해외여행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결심을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 3박 4일간 얼굴을 붉히지 않을 것이며 엄마가 잔소리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나의 정신상태를 세팅하기에는 시간이 더욱 걸렸다.   엄마는 늘 떠나고 싶어 했다.

너희 가는 곳 거기도 가고 싶고~ 나도 저기도 가고 싶다.  엄마는 4년간 쉼 없이 가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엄마아빠는 이미 갈 준비가 되었는데 큰딸인 내가 내 마음에 다시 시동을 켜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좋다. 이번 여행은 가족여행으로 많이들 간다는 사이판이다. 에메랄드빛 해변에 태어나 처음으로 스노클링이라는 걸 해보는 아빠. 이런 바다가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깜짝 놀랄 것이다. 하루는 가이드 끼고 탐방하고 또 하루는 마나가하섬을 가는 거야. 낚시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완벽해. 3일 그까짓 거 엄마가 백번 잔소리해도 도딱는 심정으로 가만있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대만 폐소공포증 환자로 김해공항 숙박만 하고 온 충격 쓰나미 삼대 친정 가족여행.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거다. 이번에는 진짜 효녀 코스프레 한번 해본다. 내가!! 나도 이번생 효녀 코스프레하고 덕이나 쌓아본다.



하지만 여행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큰 일은 생겨간다. 전 지구상에 코로나라는 어마어마한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건 뭐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 따위는 우스울 만큼 상상 그 이상의 공포감을 주었다. 전 세계는 병들어 가고 중국은 곳곳에서 셧다운을 내렸다. 청정 지역 사이판은 아직 괜찮다고 하지만 공항에서 만날 수백 명의 사람들과 꽉 닫힌 비행기 안에서 과연 괜찮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는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자제했고 동네 마트에서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사이판 가족여행이라니. 어쩜 매번 이렇게 조용하게 시작되는 일이 없는 건가. 사이판 가족여행 코로나 시작인데 가도 괜찮을까? 이번에도 정말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이제는 세상에 전 지구가 여행 가지 말라고 말려댄다.


가방에는 매일 하루에 골백번 교체 가능한 마스크와 손 세정제 그리고 기내 곳곳 손 닿는 곳마다 닦아야 할 알코올 스와프가 필요했다. 해외여행 N 번째 이렇게 비상약을 많이 챙겨가는 건 또 처음이다. 우리 사이판 여행 이번에는 진짜 갈 수 있겠지? 수도권과 거리 먼 곳에 살고 있는 가족이라 이번에도 선택의 여지없이 김해공항 출발이다. 물론 사이판행 항공은 역시나 저가 항공이다. 김해공항에 순조롭게 도착했고 이번에는 부디 폐소공포증 환자가 비행기 앉아 있지 않기만을 바랐다. 가족 6명 모두 같은 비행기를 탔고 수하물 찾고 기다리는 것에 엄마도 동의했다. 이번에는 같이 시작하고 무조건 함께한다. 사이판 여행 비행기에 지연 없이 모두 탑승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숨죽이며 이번 여행의 안전을 바라며 사이판 항공기가 날아오르길 기다렸다. 오늘 밤 사이판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자. 사이판에 내릴 때까지 우리 여행은 절대 시작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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