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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ial Scientist Apr 08. 2020

4.15 총선 특집

(1) 선거법 개정과 취지

오는 4월 15일에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이하 4.15 총선)에서 처음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 선거법 개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입 이전부터 정당 간 갈등이 첨예했고, 어렵게 국회에서 통과가 되고 나서는 비례 위성정당들의 난입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선거법은 정당들이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도대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이며, 이 제도의 도입으로 어떤 정당이 이 피 튀기는 싸움에서 더 유리해질 것인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유권자의 선택과 정당의 운명,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연비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의석수와 투표 방식의 두 가지 측면에서는 기존 방식의 규칙이 새로운 선거제도에 그대로 반영됐다. 우선, 국회의원 의석수는 총 300석이다. 그중 지역구 의원은 253석, 비례대표 의원은 47석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유권자는 총 두 표를 행사한다. 그중 한 표는 지역구 후보자에게, 한 표는 비례 정당에게 던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달라졌는가? 바로,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이 바뀌었다.


기존 방식은 비례대표 47석 모두를 '병립형'으로 선출한다. 병립형이란 비례대표 의석수와 지역구 의석수를 별개의 독립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방식이다. 즉,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분할 때 유권자가 행사한 두 표 중 비례 정당에 던져진 표만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병립형 방식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 47석에 각 정당별 득표 비율을 곱하여 비례대표 의석수를 산출한다. 예를 들어, A정당과 B정당이 비례 정당 투표에서 각각 60%, 40%의 득표를 얻었다고 하자. 이때 비례대표 의석수로 A정당은 28석(47석*60%=28.2)을, B정당은 19석(47석*40%=18.8)을 얻는다. 이 산출 과정에서 지역구 의원에 대한 투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한편, '연동'한다는 것은 지역구 의석수를 비례대표 의석수 산출 과정에 고려한다는 뜻이다. '준연동형'은 절반만 연동된다는 뜻이겠다. 새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 47석 중 30석은 준연동형으로, 나머지 17석은 기존의 병립형으로 산출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의 A정당과 B정당의 예시를 확장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만약 A정당 후보자 중 총 100명이 전국의 각 지역구에서 당선되었고, 비례 정당 득표율은 60%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준연동형 의석수를 계산할 수 있다: (국회의원 총 의석수 300석 X 정당 득표 비율 60% - 지역구 당선자 총 100석)/2 = 40석에서 캡(최대 30석 상한선)을 적용한 30석이 준연동형 의석수다. 병립형 의석수는 기존의 방식대로 구한다: 정당 득표 비율 60% X 병립형 총 의석수 17석 = 10석 (10.2).  따라서, A정당 국회의원 총의석수는, 지역구 당선자 100석 + 준연동형 의석수 30석 + 병립형 의석수 10석 = 140석으로 계산된다.


한편, B정당은 지역구 선거에서 대다수의 후보자를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 지역구 253석 중 A정당 후보자가 가져간 100석을 제외한 나머지 153석을 모두 가져간 것이다. B정당은 정당 득표율도 40%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었다. 준연동형 의석수를 계산해보면, 300석 X40%-153석= -35석으로 계산이 된다 (음수가 나와버린다!!). 따라서 B정당의 준연동형 의석수는 0석이다. 병립형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 40% X 병립형 총 의석수 17석 = 7석 (6.8)으로 계산된다. 정리하면, B정당이 얻는 총의석수는 지역구 153석 + 준연동형 의석수 0석 + 병립형 의석수 7석 = 160석이 된다.


만약 기존의 제도였다면 어땠을까? A정당은 지역구 100석 + 비례대표 28석 (정당 득표율 60% X 비례대표 총 의석수 47석) = 128석을 가져갈 것이고, B정당은 지역구 153석 + 비례대표 19석 (정당 득표율 40% X 비례대표 총 의석수 47석) = 총 172석을 가져갈 것이다.


이렇게 가상의 상황에 각 선거제도를 적용해 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존 선거제도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A정당       128석            140석

B정당       172석            160석


결론적으로 기존 선거제도는 B정당에 유리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A정당에 유리하다. A정당은 지역구 선거에서 많은 후보를 당선시키지는 못하였으나, 비례 정당 투표에서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B정당은 지역구 선거를 휩쓸고 비례 정당 투표 결과는 나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표가 분산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치적 현실에 비추어 보자면,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B정당에, 그리고 나머지 군소정당이 A정당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선거구에서의 득표 경쟁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간의 양자 경합이다. 때문에 정의당이나 국민의당 같은 군소정당은 최대한 많은 표를 비례 정당 투표에서 얻어 의석수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의당이 강력하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했던 것이다.


[연비제 도입 취지와 도입 과정에서의 잡음]

소수정당들의 원내 진출 확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주된 취지였다. 하지만 군소정당들이 연비제 도입을 원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선거법이 개정되지는 않는다. 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된 데에는 유권자의 선호를 더 잘 반영하기 위한 취지도 컸다. 기존 제도 하에서 소수 정당들은 거대 양당에 비해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키기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소수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소수 정당 지지자들에게는 다음의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1) 전략적으로 같은 진영의 거대 정당 지역구 후보를 선택하고, 비례 정당은 자신이 지지하는 소수 정당 선택하는 방법 (split-ticket voting), 그리고 (2) 자신의 선호대로 지역구와 비례 정당 모두 자신이 지지하는 소수 정당에 투표하는 방법 (sincere voting). 후자의 경우, 유권자는 본래의 정치적 선호대로 진실한 투표를 하였으나 소수 정당 지역구 후보자가 당선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사표가 발생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존 제도에 비해 사표 발생을 줄이고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호를 더 골고루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다.


정리하자면, 정당 측면에서 소수정당들의 원내 진출을 확대하여 거대 양당 위주의 정치제도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그리고 유권자 측면에서는 사표를 방지하고 더 다양한 선호를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연비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연비제는 도입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심했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연비제 도입 반대 세력과 더불어민주당과 네 개 정당 연합(4+1)을 중심으로 한 연비제 도입 찬성 세력 간 치열한 다툼 끝에, 결국 20대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연비제가 통과되었다. 이제 연비제가 도입되었으니 원내 소수정당들의 입지가 더 넓어지고 사표가 줄어들 것인가?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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