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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헤이 Jan 16. 2024

그래놀라

23년을 회고하며 만들어 본 그래놀라

다사다난한 23년이 지나고 24년이 왔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24년이다. 

23년의 시작은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연봉까지 깎아가며 어떻게든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 버텨냈던 회사가 문을 닫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터라 시원한 마음으로 이별을 맞이했다. 이 좋은 팀원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일부의 팀원을 새로이 옮기는 이직처로 데려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아있는 기간 동안 미련 없이 산티아고로 향했다. 내 삶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꾼 길이었고 5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그 길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선택이었지만 어찌 보면 나에게는 당연한 가야할 곳이었다. 입사일이 정해져 있던 터라 길고 긴 프랑스길을 갈 수는 없었기에 이번엔 포르투갈 길을 선택했다. 완벽히 다시 혼자가 되어 이 길에서 얻게 될 내 삶의 또 하나의 가치는 무엇이 될까 기대했다. 지난 프랑스길에서는 누구나 부러워할 큰 행복이 아닌 일상의 작은 기쁨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동안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작은 기쁨은 특별한 이벤트도 아닌, 매일 해야 할 일을 무사히 끝내고 별 탈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길에서는 완벽히 혼자가 되는 자유로움은 끝내 얻을 수 없었다. 10일의 절반을 걸어오며 동행들이 생겨버렸고 그와 그녀는 나를 끝까지 놔주지 않았다. 피해보려 갖가지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포기를 모르는 그들은 나의 길을 그들의 계획으로 이끌었고 그 대가로 나는 1명의 할아버지와 3명의 다국적 형제, 자매들이 포함된 까미노 가족을 얻게 되었다. 그토록 그들을 피해 다니고자 했던 내가 마지막날 밤을 떠나 보내기 아쉬워 새벽까지 그들과 술을 기울이고 다음날 아침, 헤어질 때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까지 했다. 

그즈음 깨달은 내 두 번째 산티아고의 배움은 두 가지였다. 계획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날 뿐, 아무리 대비하고 준비한다고 해도 인생은 내 계획대로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냥 놓아두고 얻은 것에 집중하는 것, 그 시간에 충실하게 이입했다면 분명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얻은 것이 있을 거라는 것이 첫 번째 배움이었다.(아주 금방까먹었지만..) 두 번째 배움은 '사람'이었다. 벗어나려고 해도 나는 분명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좋은 감정도 싫은 감정도 배우는 것도 잃어버리는 것도 사랑도 우정도 연민도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은 모두 사람들을 통해서 온다라는 사실이었다. 감정을 주고받는 이 관계를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 내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두 번째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배움 끝에 꼭 한번 다시 같이 걷고 싶은 까미노 가족을 얻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고 나를 제외한 모두는 유럽에 있지만 지금까지도 사진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사랑을 보낸다.)


이렇게 큰 배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신 것은 앞으로 다가올 거센 풍파에서도 그때 느꼈던 삶의 가치를 잊지 말고 절대 흔들리지말라는 암시였을까? 아니면 그걸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미리 주신 거였을까?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후의 삶은 겁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직한 회사는 말 그대로 카오스 중 최고의 카오스였고 위도 아래도 설득이 불가능한 이들이 가득했다. 한 달 반 동안 이 방법으로 저 방법으로 고군분투했으나 도무지 뚫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고 더 힘들었던 것은 이 혼란 속으로 나의 팀원들을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혼란스러움과 당황스러움, 괴로움과 죄책감이 더해져 나는 도망치듯 그 회사를 나왔다. 팀원들은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 죄책감은 불쑥불쑥 나타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우리 팀원을 포함한 당시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 거의 모두가 그 회사를 나왔고 함께 일했던 기간(1개월 반) 보다 더 긴 기간(6개월)을 만나며 서로의 앞길을 응원하고 있다. 요즘 가장 대화가 즐거운 모임 중 하나이기도 하고 퇴사자들이 하나둘씩 더해져 더 커지고 있는, 이상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모임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회사 이후, 타이밍 좋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예전부터 내가 생각했던 사업을 하고 계신 지금의 대표님이었다. 우연히 함께 일했던 동료의 소개로 예전부터 만남이 있던 분이었는데 이전에도 몇 번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해 주셨었다. 안타깝게도 팀원들과의 이직을 함께 고려하고 있었던 터라 함께 이직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던 카오스 회사를 선택했었는데 한 달 반 만에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해 주셨다. 그때는 내가 이 사업을 하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지션도 바꾸고 진짜 내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며 초반부터 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한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나는 대표님의 사업 의지에 대한 의심과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투지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애써 나의 무능력을 탓하며 더 불태워 보고자 했으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때쯤엔 이 모든 노력이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의 탓은 차치하고 이 모든 지옥은 내 욕심이 기반이 되어 또 나의 계획을 만들어냈고 그 모습대로 만들어내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나를 푸시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23년을 한 달 앞두고 나는 화병으로 인한 우울증을 진단받고 그때서야 나의 욕심을 제대로 들여다보았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던 즈음에 12월 31일을 맞았고 주일 예배와 송구영신 예배에서 전해주신 목사님의 주된 말씀은 내가 세운 나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이었다. 내 계획이 아닌 그분의 계획을 믿어야 함을 알았을 때 비로소 나는 올해 초 산티아고에서의 배움을 떠올렸다. 마지막을 정해놓고 분명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지금은 버리는 것에 집중해야 함을 안다. 조급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욕심들을 떠나보내는 시간과 함께 24년을 맞이했다. 


그래서 24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나 보다.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버려내고 내 안의 혼란이 잠잠해지기를 소망했나 보다. 그러나 쌓아둔 욕심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얼마나 버려야 할지 새로운 한 해가 왔어도 여전히 혼란함은 남아있다. 아직도 목표와 욕심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에 욕심의 꼬리표를 붙이고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그 과정들 속에 갇혀 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내 안을 보고 무언가는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혹독했던 12월보다는 차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나를 위로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예배 후 조용히 들어온 컴컴한 나의 집에서 TV 속 카운트다운을 멍하게 쳐다보며 간단한 술 한잔과 함께(이게 얼마나 믿음과 배치되는 행동인가.)한 해를 떠내 보냈겠지만 이런 마음의 혼란함 속에 알코올은 더 이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냥 주말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별다른 이벤트 없이 마무리하는 일상처럼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의 주말 루틴은 요리 아니었나? 31일, 오늘도 역시 나의 루틴을 지키기로 하며 내년 일상을 위한 식량, '그래놀라'를 만들어놓기로 했다. 


그래놀라는 한 2~3달에 한 번씩 만드는 일상 식량이다.  도시락 싸기 귀찮은 날, 밥 먹기 귀찮은 날... 은 음.. 별로 없구나(ㅎ) 보통은 저녁을 간단히 때우는 용도, 너무 소식한 날 살짝 출출함만을 달래기 위한, 간식같이 틈틈이 먹기 좋은 아이템이라 항상 넉넉히 만들어 구비해 두는 편이다. 그렇게 미리 만들어두는 식량이 대략 그래놀라와 뮤즐리 2~3가지쯤이고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순서대로 돌려가며 만드는 편이다. 남아있는 그래놀라가 많기도 하고 원래는 뮤즐리를 만드는 순서였으나 냉장고에 남은 과일이 별로 없었고 마침 요즘 빠져있는 딥 때문에 집에 만들어둔 타히니가 많다는 이유로 또다시 그래놀라를 만들게 되었다. 오래 저장해 두어도 상하지 않고 가끔 놀러 오는 친구들이나 밥 대충 챙겨 먹는 동생들에게도 건강식을 선물할 수 있어 만들어놓으면 절대 남는 아이템은 아니니까.

생각보다 간단하고 만들기 간편한 그래놀라는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 오트밀의 비중이 가장 높고 각종 곡물 & 씨앗, 견과류의 비율 그리고 자잘한 곡물(치아시드 등)류와 맛을 끌어올려주는 기타 재료(시나몬 같은 향신료나 크랜베리 같은 부재료 등)들의 비율이다. 물론 나도 명확하게 그 비율을 지키는 편은 아니기도 하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구비해 둔 재료들에 따라 구성 재료들을 넣고 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오트밀이 5, 주요 필수 곡물 및 씨앗, 견과류들이 3, 자잘한 곡물 및 기타 재료를 2로 잡아 비율을 맞추는 편이다.(처음 요리 선생님에게 배울 때의 비율인 것으로 기억하지만 레시피.. 는 사라지고 기억에 의존해 만들고 있다.) 주로 아래 사진처럼 한 곳에 담고 눈대중으로 비율을 나누어 담으면서 계산하는 식. 계량 따윈 없다.

오트밀은 뮤즐리 때문에라도 항상 떨어지지 않게 넉넉히 쟁여두고 있고 해바라기씨, 호박씨는 그래놀라에 필수로 넣는 편이다. 사실 뭉쳐놓으면 맛을 잘 못 느끼지만 알이 큰 편이라 씹는 맛의 기쁨을 더해주는 친구들이다. 반면에 코코넛은 옵션으로 넣는 편인데 맛이 크게 잘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고 코코넛의 단맛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어쩔 땐 조금 이질감이 느껴져서 있으면 넣고 없으면 빼곤 한다. 치아시드, 햄프시드 역시 있으면 넣고 없으면 안 넣는 아이들이지만 왠지 나한테는 필수적(특히 장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왕이면 꼭 넣으려고 하는 편이다. 또 채식하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아마씨 가루나 뉴트리셔널 이스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나 역시 가끔 채식을 하고 있어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편이고 이곳저곳 훅훅 생각날 때마다 한 스푼씩 넣곤 한다. 

견과류는 철저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넣는다. 해바라기씨나 호박씨도 가끔 심심할 때 까먹으면 좋은 아이템들이지만 최애는 헤이즐넛. 입이 심심할 때 한 주먹 잡고 오도독 씹어먹으면 그 씹는 식감에 한참 빠져들곤 한다. 다만, 그래놀라를 만들 때에는 알이 너무 큰 편이라 호두나 아몬드 같은 아이들을 모두 봉지에 넣고 밀대로 밀어주면서 뽀개어 넣어준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맛과 식감이 이 아이들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아 조화로운 맛을 위해서는 신경 써서 뽀개주는 것이 좋다. 


예쁘게 담는게 아니라 눈대중으로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담음새다. 다만 견과류는 비율 무시, 좋아하는만큼 담고 잘 부셔서 후두두둑 합쳐준다.


다음은 이 모두를 결합시켜 줄 소스? 시럽? 차례.

요즘 집에서 타히니를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모두 사 먹었는데 찾아보니 만드는데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고 필요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으니 경제적일 것 같았다. 껍질 벗겨진 깨만 구비해 두면 언제든지 타히니를 만들 수 있다. 전에 사 두었던 중동에서 날아온 타히니와 비교해 보니 맛의 큰 차이도 없다. 다만, 껍질 벗겨진 깨를 매번 사는 게 별로인 듯해서 보통 구할 수 있는 볶은 참깨로도 만들어볼 예정이다. 돈을 좀 더 벌어서 바이타믹스를 사면 정말 완벽한 질감이 될 텐데. ㅠ 하지만 24년 결심대로 욕심은 내려놓기로 합니다. 닌자야 난 당분간 너만 있으면 돼.

아무튼 타히티를 넣고 대추야자도 넣고 물을 적정량 넣어주고 휘리릭 갈면 위에 모아놓은 아이들을 하나로 결합시켜 줄 수 있는 끈끈한 소스가 완성된다. 바닐라 익스트랙도 넣어주면 금상첨화! 주로 시럽을 넣는 분들이 많으시지만(나도 예전엔 그랬었더랬고...) 나중에 요리 선생님한테 그래놀라를 제대로 배울 때 대추야자를 쓰시는 걸 보고 따라 했는데 시럽의 단맛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워지는 단맛에 그때부터는 절대 시럽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입맛에 가장 적합한 재료가 아닐까 싶다.


보기 굉장히 거북스럽지만 갈아놓고나면 자연스러운 단맛이 쭉 들이마시고 싶은 맛이다. 남은 것은 손가락으로 쪽쪽.


비닐장갑을 끼고 마치 김치 양념을 하는 것처럼 질감 있는 아이들을 모두 섞어준다. 소스 양이 너무 많은, 꾸덕꾸덕한 질감까지는 아니고 살짝 아이들이 엉길 수 있는 정도의 양이면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아니 되니.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양을 눈으로 보며 계량해 준다. 요리 선생님들은 이걸 다 계량해서 알려주셔야 하니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오븐 예열이 끝나면 아이들을 꾹꾹 눌러주며 펼쳐 준다. 소스가 묻지 않은 아이들은 헬렐레하고 나돌아 다니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도 있고, 저런 아이들도 있는 거니까. 어차피 뒤집으면서 부서지기 마련이다. 이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할 때도 있었지만 한 50번 이상 만들어보고 나면 뒤집을 때 오븐에 떨어지는 것은 그냥 후루룹 주워 먹곤 한다. 이게 제일 맛있다. 한 15분에서 20분 정도로 굽고 끝나면 아이들을 다 뒤집어서 섞어 또 15분 ~ 20분을 구워준다. 시간을 결정짓는 건 항상 구움색이다. 얇은 브라운 색이 나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왜냐? 또 구울테니까.(분명히 간단하다 그랬는데..) 



건조 크랜베리와 건조 블루베리를 넣고 다시 한번 5~10분 정도 굽는다. 원래는 항상 건조 크랜베리만 넣었었는데 요즘에는 건조 블루베리를 함께 넣고 있다. 보기에도 좋지만 크랜베리는 새콤한 맛을 주로 내고 블루베리는 묵직한 단맛을 준다. 둘이 함께 입에 들어와서 씹힐 때의 조합이 상당히 좋다. 하지만 역시 욕심은 금물. 이 맛에 중독되어 너무 많은 양을 담게 되면 그래놀라의 고소한 맛을 느낄 새가 없다. 역시 눈으로 대략 조합을 보며 적절한 양을 투하한다.  


다 구워진 그래놀라. 사진 색상은 연해 보이지만 꽤 짙은 브라운색이 날 때까지 굽는 편이다.


온 집안에 고소한 향이 짙게 퍼지면 비로소 그래놀라 굽기는 끝이 난다. 오븐 채로 잠시 식혀두고(생각보다 금방 식는 편.) 식으면 통에 담아둔다. 마음이 든든해져 온다. 이런 저장 식량들을 만들 때마다 느껴지는 이 벅찬 기분이란. 뭔가 큰 일을 해놓은 것 같다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공감 가는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자주 찾는 아이이니만큼 주방 조리대에 항상 올려두고 심심할 때마다 손에 담아 먹기도 하고 요거트나 각종 우유들에 부어 먹기도 한다. 주로 과일과 함께 요거트에 넣고 대추야자로 만든 시럽만 살짝 넣어 저녁 도시락을 챙기는 것이 기본이다.


든든한 내 식량. 식량의 주요 활용 방법.




적으면서 해야 할 말을 생각해 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23년의 끝과 24년의 시작의 기로에서 그래놀라를 만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곡물, 다양한 씨앗, 각종 견과류와 부재료들까지. 이 아이들처럼 제각각 크고 작은 일들이 유난히 많은 23년이었다. 다시 한번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고 그 안에서 더 없는 행복감도 느꼈다. 또다시 밑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았으며 혼돈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다 이제는 포기하고 조금씩 털어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까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가 갖고 있는 좋은 모습들, 싫은 모습들도 다이내믹하게 관찰하게 된 한 해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24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제는 계획과 목표를 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답답함은 다 풀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훗날 내 모습 안에 이 과거의 모습들이 뭉쳐져 내면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든든한 내 모습이 되길 희망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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