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골프가 발전해 가는 과정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울주군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 많은 선배들이 골프를 권했다. 외지에 있으니 퇴근하고 할 일도 없고, 어차피 치게 될 골프 일찍 시작할수록 이득이라는 이유였다. 이미 많은 선배들이 여가 시간에 골프를 치고 있었다.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초록색 그물이 쳐진 야외 연습장에 나가 -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실내 연습장이 많지 않을 때였다. 하물며 울주군 외지겠는가. - 연습장에 비치된 아이언으로 공을 쳐봤다. 맞을 리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그 연습장에도 레슨 프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 동기들은 모두 골프보단 헬스에 빠져 있었고, 나도 그다지 골프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골프는 재미없는 운동으로 내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었다.
공중보건의 근무를 마치고 경기도로 올라와 부천에 피부질환 프랜차이즈 한의원을 오픈했다. 한의원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서울에 있었던 선배 한 명이 진지하게 골프를 권했다. 골프를 권했다기보단 권유를 빙자한 강요와 협박이었다. 아직까지 공을 안치면 어떡하냐,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시간도 돈도 절약할 수 있다. 골프로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냐. 이번에도 성화에 못 이겨 한의원 사거리에 있었던 24시간 실내 연습장을 등록했다. 이번에는 레슨도 받기로 했다. 실내 연습장에 작은 사우나와 헬스장까지 있었으니 또 골프가 재미없으면 헬스하고 사우나하면 돈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억지로 시작한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월화수목금, 매일 오전 진료가 끝나면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립에는 힘이 넘쳤고 장갑은 사흘이 멀다 하고 찢어져 연습을 하다 손바닥에 피가 흐를 정도였다. 오늘은 그만하자는 동갑내기 레슨 프로의 말을 뒤로하고 열심히 아이언을 휘둘러 댔다. 그러다 문득 내 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를 권했던 형들이 드라이버와 우드를 선물해 주었고, 아이언과 퍼터만 레슨 프로가 권해주는 제품을 샀다. 마침 차를 바꿨을 때 준 골프백이 있었다. 트레이닝복을 입다 골프복을 사고, 골프화와 모자도 하나둘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5월, 레이크사이드 cc에서 대망의 첫 라운드를 할 수 있었다. 4번 아이언, 6번 아이언, 피칭 웨지를 들고 산과 들을 누볐다. 주머니에 공을 두둑이 넣고 출렁거리는 바지를 붙잡고, 그린에선 장갑을 벗을 여유도 없었지만 그늘집에서의 보쌈과 막걸리는 꿀맛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골프가 어느덧 8년째다. 실력은 지지부진했지만 골프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연습장을 바꾸어가며 레슨을 받고, 골프 유튜브를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골프붐이 불기 시작하면서 골프 레슨 유튜버가 많아지던 시기였다. 알고리즘에 걸리는 프로의 영상은 모두 찾아보고, 새로 뜨는 영상을 공부하느라 다른 일은 뒷전이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골프에 빠져있을 때,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 골프에 입문하고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면, 2-3년이면 백타를 깨고 흔히 말하는 백돌이를 탈출하게 된다. 90대를 치는 보기 플레이어로 명랑 골프를 치다가 골프에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80대 후반에서 중반으로 스코어가 넘어오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데, 유독 나만 공이 너무 맞지 않는 거다. PT를 2년 받고 필라테스를 1년 하면서 필라테스 강사 과정을 권유받기까지 했으니 근력과 유연성이 모자랄리는 없었다. 그런데 유독, 나만 공이 맞지 않았고, 스코어가 줄지 않았다.
빈 스윙이 프로 같다는 이야기는 5년 넘게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레슨을 중단하고 혼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는 너무나 방대한 내용이 있었고, 스윙 이론은 너무 많아서 일관되지도 않았다. 왼팔을 써라, 오른 손목을 써라, 몸을 써라, 팔을 써라, 치고 돌아라, 돌고 쳐라 등의 내용들은 도통 몸에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유명한 레슨 프로들을 찾아 원포인트를 받아 보았지만 한결같이 근본적인 원인은 찾아주지 못했다. 레슨 프로들의 답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거나 내 몸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기나긴 독학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핸드폰으로 내 스윙을 찍어보면서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한 골프 유튜버의 구독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구독자 단톡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모임에 참석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다보니 연습 중에 여기저기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상담도 해주고 한의원에 찾아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나보다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치료받으러 왔다가 레슨을 해주고 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골프 스윙과 통증을 연결하게 되었고, 똑같이 통증을 치료하더라도 몸의 근력과 유연성에서 원인을 찾고 스윙을 교정하는 방향으로 설명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9년간의 부천 진료를 끝내고 선릉에 한의원을 새로 개원하면서 골프클리닉을 구상하게 된 배경이다. 차별화된 클리닉을 운영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 TPI 과정과 권영후 박사님의 골프 생체 역학 강의를 수강했다. 골프 스윙의 운동 역학적 분석과 스윙 동작에 따른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은 평소 근육학과 통증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시원한 냉수 같았고, 내 스윙의 문제점을 찾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골프 스윙 이론을 정립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왼손잡이 오른손골퍼가 7년간의 기나긴 백돌이 시기를 거치면서 골프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하며 정리한 내용의 결정체다. 내용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능력 있는 많은 프로님들이 가르쳐주셨던 부분이고, 더 깊은 내용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목차를 쓰고 책을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골프 스윙을 가르치면서 많이 나오는 ‘자연스러운’ 스윙을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왜 아무리 연습을 해도 엎어치는 습관을 고칠 수 없는지, 다운스윙에서 오른발 뒤꿈치가 떨어지는 습관은 정말 스윙의 문제일 뿐인지, 내 오른팔은 왜 프로처럼 펴지지 않는지, 180cm가 넘는 키에 몸에 근육이 넘치는데도 왜 드라이버 비거리는 200m를 넘길 수 없는지 등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스윙이 아니라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을 통한 운동학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똑바로 서서 내 요추의 커브를 체크해 보는 것만으로도 c-posture와 s-posture 중 내게 어떤 어드레스가 유리한지도 알 수 있다. 레슨 프로가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할 수 없었던 지식들이 내 몸의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을 이해하면서 설명이 된다. 결국 내 몸의 움직임을 알고 내 몸에 맞는 스윙을 할 수 있으면, 가장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스윙을 할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이제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