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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Jul 24. 2019

내겐 너무 버거운 어린 시절

이야기의 시작


1.


 우리 엄마는 굉장히 억척스러운 분이었다. 물론 30대인 내가 어렸을 적에야 형편이 다들 고만고만해서 기본적으로 절약을 하면서 살았지만, 유독 우리 엄마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시장에서 장을 볼 때마다 단돈 백 원이라도 더 깎으려고 상인들과 오래 대거리를 했다. 엄마가 일정 시간 이상 대거리를 이어가면, 나는 엄마를 피해 슬그머니 옆으로 물러서 있었다. 못 이기는 척 적당히 깎았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높아져갈수록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생일 때에 할인마트가 처음 생겼다. 엄마는 생필품은 할인마트가 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를 데리고 한 번씩 마트에 갔다. 당신의 기준에서는 다만 얼마라도 버스비가 드니까 자주 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갈 때마다 최대한 많이 샀다. 어느 정도였냐면, 짐을 담은 비닐봉지를 잡고 조금만 걸어가도 무게 때문에 봉지의 손잡이가 단단하게 손을 쪼아서 아픈 손 때문에라도 잠시 봉지를 내려놔야 했을 정도였다. 엄마는 그런 것을 양손 가득 든 채로 마트에서 나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택시를 타지 않았다. 손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몇 번이나 짐을 내려놓으면서도 끝까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그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는 버스가 1대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 때문인지 배차간격이 꽤 길었다. 아마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대도시에서 그 정도 간격은 꽤 어마무시했다. 그것은 옆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몇 번이나 완전히 바뀔 만큼의 시간이었다. 여름에는 특히나 더위와 싸우면서, 또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면서, 우리는 혼잡한 정류장에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했다. 지친 우리가 아무리 징징거려도 엄마는 한사코 그 버스만을 고집했다. 


 그때마다 속으로 제발 버스가 오기만을 얼마나 빌고 또 빌었던지. 사실 막상 버스가 도착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짐을 둘 만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집에 다다를 때까지 그 좁디좁은 공간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어쨌든 가고는 있으니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지금은 구체적인 기억이 많이 사라졌지만, 절대로 시간이 흐를 것 같지 않던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의 지루하고 고단했던 그 느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2.


 그런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큰 가전제품을 사는 것이 중요한 취미였다. 현재 보통의 중년 남자들이 차를 튜닝하거나 차를 바꾸거나 자전거 장비에 투자하거나 좋은 시계에 투자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큰 가전제품에 한 번씩 꽂혀서 큰돈을 지출하였다. 내가 내 용돈조차도 마음대로 쓴다고 엄마에게 혼났던 초등학교 3학년일 때에 아버지는 300만 원대의 풀세트 전축을 샀다. 16평짜리 아파트 안방에 그 전축은 버겁게 들어앉았다.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쯤에 아버지는 앞으로 컴퓨터가 꼭 필요한 시대라면서, 새로 나온 삼보컴퓨터를 미리 샀다.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쯤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카세트테이프 재생기와 폴더 휴대폰을 한 대씩 선물로 사 주었다. 그리고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 아마 가장 큰 것이었을 TV를 한 대 샀다. 그것은 지금처럼 얇은 TV가 나오기 전의 제품이라서 뒤통수가 어마어마하게 튀어나와 무게가 굉장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 좋은 아버지는 이사를 할 때에 인부들이 아니라 딸들인 우리에게 그 TV를 TV대에 올리라고 말씀하였다. 



3.


 가족은 '싫다, 싫다'하면서도 닮게 마련이다. 나는 어느새 두 분을 닮아 있고,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할수록 항상 조급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여전히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성격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많이 바뀌지 않았어?' 하면서 확인받으려고 하던 것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고, 이제는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로 바뀐다면 저런 질문 자체가 필요 없겠지. 자연스럽게 일상을 그렇게 살고 있을 테니까. 


 과거와 달리, 이렇게 풍족할 뿐만 아니라 인권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시대에 여전히 과거 속에 갇힌 채, 입으로만 나불거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 모든 행동에 제동을 걸어서 내가 습관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우리 딸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나는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가족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딸에게 좀 더 행복한 엄마이고 싶다. 그 적정한 선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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