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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Jul 24. 2019

용돈의 용도

용돈을 마음대로 쓰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용돈을 잘 쓰지 않았다. 절약하는 엄마의 생활 습관을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원체 친구와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용돈을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언니는 용돈으로 친구들과 간식을 먹었고, 때때로 나에게 군것질거리를 사주고는 했다. 


 나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았고, 통장에 넣지 않은 채 서랍 안에 두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십만 원 정도를 모았던 것 같다. 나는 만 원짜리가 한 장씩 늘어가는 게 좋았다. 매일매일 얼마나 모았는지 세어 보는 것은 중요한 일과였다. 


 엄마는 당신도 어렸을 적에 용돈을 많이 모았다면서, 필요할 때마다 외할머니께서 엄마의 용돈을 빌려갔다가 다시 돌려주고는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때때로 내 용돈을 빌려갔다가 돌려주었다. 그것도 하나의 쏠쏠한 재미였다.




 사실 처음부터 용돈을 모으는 것에 취미를 붙인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큰길 중간에 골목으로 한 발짝만 들어가면 분식집이 있었다. 다른 먹을거리도 많았겠지만, 내가 좋아했고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백 원짜리 식빵 튀김이었다. 식빵 반 조각을 튀김옷에 담가서 튀긴 거였는데, 부드럽고 달달한 그 맛이 참 좋았다. 그걸 설탕에 찍어 먹으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마음껏 먹지 못 했다. 백 원짜리 하나를 아끼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 때문에 도저히 마음껏 사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용돈에 관해서 가장 억울하게 느껴지는 일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에 일어났다. 나는 당시에 새로 나온 책을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샀다. 권당 3천 원짜리로 3권짜리 시리즈였으니, 총 9천 원이었다. 교육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화책도 아니었다. 어린이가 보기에 적당한 일반적인 책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 책을 산 것을 알자마자, 총채를 들고 나를 쫓아오셨다.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책을 샀는데도 왜 혼이 나야 했을까? 금액이 문제였을까? 아니다. 아마도 엄마는 당신이 아끼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 특히 자식이 돈을 쓰는 것에 화가 나셨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어둠 속에도 언제나 빛은 있다. 용돈을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에 갈 때쯤에는 70만 원 정도를 모았고, 그 돈으로 나는 대학 2학년 때에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베이스 기타를 샀다. 물론 그 70만 원을 모을 때까지 아예 돈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에 '윙크' 같은 만화책을 사기도 하고, 서태지가 나온 잡지를 사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에 친구 따라 미용실에 가서 '스트레이트 파마'라는 것을 처음 하기도 했는데, 엄마가 돈을 쓴 것 자체도 못마땅해하였지만, 당신이 이용하는 미용실에서 해야만 경품을 받을 수 있는데 다른 곳에서 했다고 나를 혼내기도 했다. - 딸이 처음으로 머리를 했다는 사실보다 경품의 유무를 더 중요시 하는 것 같아 굉장히 속상했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대학생 때에는 서태지의 브로마이드를 받기 위해 서태지가 광고한 프로스펙스 트레이닝복을 20만 원 정도 주고 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베이스 기타를 산 것은 그것대로 큰 기쁨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에 백 원짜리 식빵 튀김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것은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미래를 위한 저축과 현재를 위한 작은 소비는 어느 정도의 균형이 적당한 것일까? 적어도 소비를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 정도는 아니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어느새 딸아이는 용돈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아서 방과 후 수업이든 학원이든 조금씩 늘리고 있는 와중에, 미술학원에서 떡볶이를 먹고 싶어 하길래 오백 원짜리를 넣어주었다. 오백 원짜리를 몇 번 넣어주다 보니, 동전이 없어져서 처음으로 천 원짜리를 넣어준 날이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 형광색 지우개 하나를 내게 보여 주었다.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 떡볶이를 사 먹고 남은 돈으로 지우개를 샀다고 했다. 예뻐서 샀다고. 


 나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당연히 오백 원을 남겨올 줄 알았던 것이다. 선물 받은 지우개가 벌써 스무 개가 넘게 집에 있는데, 하필 사 온 것이 지우개였다. 나에겐 오백 원을 남기지 않은 것도, 지우개가 이미 많은데 한 개를 더 산 것도 낭비처럼 느껴졌다. 


 딸아이의 친구 엄마 중에 벌써 아이에게 일정 정도의 용돈을 주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엄마는 어렸을 적에 지우개를 모으는 게 취미였다고 말했다. 그 지우개는 나중에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허용해줄 수 있을까. 아이가 크는 것보다 내가 더 커야 아이에게 자유를 더 줄 수 있을 것인데, 나에겐 항상 그것이 숙제처럼 느껴진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내가 대체로 사주니까, 아이에게 미술학원에서 먹는 간식을 매일 오백 원으로 제한했다. 천 원짜리를 넣더라도 오백 원만 쓰라고 했다. 대신 그것만으로는 배가 고픈 것 같아서, 최근에는 카스타드나 마가렛트 같은 낱개 과자를 두 봉지씩 넣어주기로 했다. 아이는 어느 날엔가 해맑게 말했다. 오늘은 친구와 돈을 합쳐서 떡볶이와 슬러쉬를 나눠 먹었다고. 아마 아이는 자신의 자유를 획득해 나가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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