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먼저 부딪쳤던 절약의 문제는 휴지였다. 나는 어릴 때에 화장실에서 앞은 휴지 두 칸, 뒤는 휴지 세 칸으로 해결하고는 했다.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성인이 되고 나서, 화장실에서 쓰는 휴지의 칸 수가 훨씬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평상시에 휴지를 쓸 때에 어느 정도 아끼는 편이었다. 되도록이면 휴지보다는 물로 직접 씻거나 행주나 걸레를 이용했다. 그런데 물자가 풍족한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우리 아이는 휴지를 마구 써댔다. 크리넥스 휴지를 한 움큼 잡고 서너 장씩 뽑아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한 번에 한두 장씩만 뽑으라고 혼냈다.
반면에 아이에게 밥은 남겨도 된다고 말했다. 친정아버지는 식탁에서 내일 다시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을 제외하고, 모든 음식을 남기지 못하게 하였다. 가전제품에 큰돈을 들이는 아버지도 음식만큼은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배가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특히 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와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횟집에 가서 외식을 할 때에 가장 심했다.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양이 버거울 정도로 고기를 굽거나 회를 주문해 놓고는, 억지로 다 먹게 하기 일쑤였다. 당시에 우리에게 가장 적정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는 기준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밥을 남겨도 된다고 하니까, 어느새 아이는 먹기 싫을 때마다 배가 다 찼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나의 트라우마 때문에 반대로 가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배가 부르다고 할 때에 몇 숟가락만 더 먹거나 반찬만 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절약하는 습관이 많이 부서지게 된 것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부터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나는 결혼식 준비에만도 지쳐서 첫 해외여행이었던 신혼여행에서 감기 몸살기로 고생했다. 원래 휴양 위주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차저차 일정을 소화하기는 했지만, 내내 골골거려서 기분을 망치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신랑은 매년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걱정부터 앞섰지만, 신랑은 그것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는지 추진력 있게 여행을 기획했다.
결혼한 첫 해 겨울에 일본 오사카 여행을 시작으로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매년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매번 물건을 살 때마다 비교적 가장 싼 것을 고르는 나에게 물가도 전혀 모르겠고, 환율 때문에 금액이 얼마 인지도 전혀 모르겠는 상태로 값을 지불해 본 경험은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돈을 쓸 때마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일일이 가격비교를 하지 않은 채로 계산을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경험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돈을 지불하고 나면, 꼭 잔돈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몽골 여행 중에도 마트에서 계산을 마친 뒤에 잔돈을 꼼꼼히 확인을 하고서 지갑에 넣었다. 그런데 아뿔싸! 아예 남은 돈을 곧바로 넣어버렸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들여 잔돈을 꼼꼼히 확인하는 동안에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서 지갑을 털린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습관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무턱대고 돈을 쓴다면, 당장 다음 달의 생활비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다만, 화살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소비를 할 때마다 긴장을 하고, 되풀이해서 잔돈을 확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제품을 선택할 때마다 가격만을 최우선으로 할 게 아니라, 품질이나 여타 다른 여러 기능들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사면 될 것이다. 그러한 방법을 시행착오를 통해 겪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