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후회와 불필요한 오지랖
나는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 대체로 맞춰주는 편이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꼭 이래야 한다'는 법칙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나에게 안심을 해서 이런저런 참견과 오지랖에 노출될 때가 유독 더 많은 것 같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두 명의 주부 앞에서 각각 귤껍질을 깔 일이 있었다. 자각하지 못한 채, 딸아이에게 간식을 줄 때의 버릇으로 귤껍질을 까서 귤을 한두 알씩 갈라놓고 있었다.
1.
-귤을 왜 갈라놓니?
-아이 줄 때의 버릇으로 나도 모르게 이렇게 했네.
-굳이 왜 그렇게 해. 소근육이 발달되도록 스스로 까게 하지.
2.
-귤을 왜 갈라놓아요?
-아이 줄 때의 버릇으로 나도 모르게 이렇게 했네.
-귤은 먹을 때 갈라먹으면 되죠.
-나는 딸기는 그냥 잡고 먹으라고 주는데, 귤은 이렇게 한다.
-나는 딸기는 꼭지를 따는데, 귤은 이렇게 안 해요.
이 사건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나는 양파를 썰면서 칼을 똑바로 세운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세웠다.
3.
-양파를 왜 이렇게 썰어?
-이렇게 썰면 더 얇게 썰려.
-굳이 왜 그렇게 해. 똑바로 썰면 되지.
어째서 이렇게 사소한 일까지 참견하려 드는 걸까. 귤을 어떻게 까든 양파를 어떻게 썰든 인생에서 큰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데. 이런 패턴은 사소한 것을 후회하는 일로도 이어진다.
2번 주부와 김치를 담글 때의 일이었다. 그 주부는 양념을 무치기 위해서 잘라놓은 배추 조각을 하나 들 때마다 '이거 너무 이상하게 잘랐죠?'라고 한 마디를 꼭 덧붙였다. 나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만들자고 말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아마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랬던 적이 있었겠지.
짐작하건대, 아마도 세상을 '한 줄 서기'로 배운 것에 대한 폐해가 아닐까. 선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에 서야 한다고 배우면서 컸기 때문이다. 그 선이라는 것이 어른들의 불안에 따라서 들쑥날쑥하다 보니 정확하게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 마음대로 지레짐작 선을 그어나가다 보니 지나치게 사소한 부분까지도 한 가지 방법만을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 고집은 낯선 환경이나 낯선 사람이나 낯선 절차 앞에서 더 강화되는 것 같다.
여러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소한 거 좀 틀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