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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Apr 18. 2024

매트 위의 세계

요가가 내게 알려준 것들

생각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요가


 생각이 많은 성격 탓에 불안한 감정을 자주 느껴 요가를 배워보려던 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사한 집 바로 뒤에 요가원이 있었고, 지옥 같은 마음에 어딘가에 이끌린 듯 시작한 요가는 대체 내게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 마음의 안정을 금세 찾았다. 그동안 타인을 향해있던 마음이 나에게로 향해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요가가 끝나면 곧장 근처 호수로 가 걷기 명상을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한 5월, 참 걷기 좋은 날씨였다. 

 이상하게 가장 힘들 때나 기쁠 때, 유독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를 걸었다. 요가를 시작하고 내가 괜찮아지기 시작했고, 어쩐지 이 순간 행복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힘들다는 말을 들었던 친구에게 이제는 내가 안녕하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잡념이 많을 때면 몸을 혹사시키는 버릇이 있다. 무작정 달린다던가 웨이트를 미친 듯이 한다거나 혹은 쉬지 않고 약속을 잡아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무진장 마신다거나. 그러다 보면 그 순간은 괜찮아질지 몰라도 또다시 혼자서 고요한 방 안에 있을 때면 잡념이 생기곤 한다.

 매일 밤 잠드는 것이 어렵던 내가 자기 전 잡념이 생길 때면 깊은 호흡을 내쉬기 시작했고, 호흡과 함께 그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초연함을 깨우치게 되었다. 중도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할 줄만 알았던 내가 이제는 감정이 한 쪽으로 치우칠 때면 용수철처럼 다시 돌아가려는 힘이 생긴 듯했다.


숨 쉬세요!


 요가를 배우던 초반, 수련 중에 힘겨운 아사나를 할 때면 선생님께서 다가와 "숨 쉬세요! 숨 쉬세요!"를 외쳤었다. 나는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숨쉬기, 호흡이라는 것을 잘못하고 있었구나. 복잡하고 좋지 않은 감정을 내뱉고, 좋은 것을 들이마시는 법을 몰라서 그래서 그렇게 불안하고 헤맸던 거구나. 

 스스로 초연함을 찾는 방법을 몰랐던 거였다. 이제는 나의 호흡에 집중하는 그 순간이, 내가 살아있음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지금도 아주 고난도 자세는 어렵지만, 되지 않던 자세가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가능해졌고 어려운 아사나를 하던 중에 감정이 휘몰아쳐도 이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아사나는 요가를 할 때 기본적인 자세들이 아닌 편안한 자세라고 한다. 편의상 '자세'를 뜻하는 듯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었지만  몸과 마음은 분명 바뀌었고, 그런 내가 대견하다.


몸에 힘을 빼는 게 가장 어렵다.

 사실 나는 허리의 유연함을 조금은 타고난 탓에 후굴이 자신 있었다. (후굴이란 상체를 뒤로 젖히는 자세다.) 그에 비해 하체는 상체에 비해 뻣뻣한 편이었고, 무리를 해서인지 언젠가부터 무릎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갑작스레 다시 시작한 러닝 탓인지, 웨이크보드 탓인지. 언제나 그래왔듯 "괜찮아지겠지." 원인 모를 통증에도 계속해서 운동을 이어 나갔다. 중독이 되어버린 것인지 집착이 되어버린 건지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날엔 마음이 불안해져왔다. 

 결국 '무릎 연골 연화증' 진단을 받았고 심각한 건 아니지만 몸의 일부가 고장 난 적은 처음이라 원인을 꼭 찾고 싶었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몸은 튼튼하다고 믿어왔기에 어떤 상황에도 내 몸은 버텨줄 것이라 생각했고, 견디다 못한 내 몸은 비로소 살려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던 거다. 내 몸에서 가장 약한 지도 몰랐던, 그럴지도 모를 무릎에 통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타 수련 날이었다. 아사나 108초를 버티기를 하고 선생님께서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물어보셨다. "힘들었어요. 시원해요. 시간이 안 가요. 허리가 아파요" 수련생들이 여러 가지 감정을 말하던 중에 나는 '오기'라는 감정이 문득 떠올랐다. 어떤 아사나를 하든 '오기'로 버틴다는 걸 느꼈다. 매사에 버티기, 참기를 잘하던 나였는데 실은 뭐든 '오기'로 버텼던 거였다니. 조금은 숙연해졌다.

 선생님께서 내가 무릎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의 수련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셨는지 "수빈 씨는 항상 몸에 힘을 주고 있어요. 수련을 하고 있지 않는 이 순간에도."라고 하셨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 하는 두려움에 시작을 주저하고, 크게 마음을 먹고 시작을 하고 나서는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버티고 또 버티는 그런 태도가 내 몸에 독이 되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걱정이 없어 보인다고, 늘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밝게 웃어 보일지라도 내 안에서는 쉴 새 없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몸에 힘을 조금만 빼자.'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 말자.'

 29살, 유난히 아팠던 성장통 덕분에 요가를 만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렇게 만난 내 매트 위의 세계가 참 좋다. 몸에 힘을 빼고 깊은 숨을 쉬어내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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