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부신 Nov 24. 2023

운수 좋은 날과 재수 없는 날

요즘 내게 생긴 조금 기분 좋은 변화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이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할 때 보통 나의 하루는 여기서부터 시험대에 오른다.집 밖에 한발 내딘 순간부터 카카오 맵을 켜 한의원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한다.


3분 뒤 바로 앞에 있는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엘레베이터는 자꾸만 15층에서, 12층에서, 10층에서 멈춰 선다. 겨우 나를 태우고도 두세 번 멈춰 선 엘레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 버스는 진즉 떠난 뒤. 그럼 다시 한 정거장 앞으로 걸어가 거기서 탈 수 있는 버스를 찾는다.


5분 뒤 버스가 도착한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3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때 바로 그 버스가 내 옆을 휙 지나친다. 출근도 하기 전에 벌써 나와 세상은 타이밍이 두 번이나 어긋난 것이다.


-


생각해 보면 나는 이런 작은 불운에 실망하는 일들이 잦았다.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오늘 재수 없음을 점치고 몸을 사린다던가, 그 작은 어긋남을 이유로 알 수 없는 화를 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실망하지 않는 모든 날들이 대부분 운수 좋은 날들임을 깨달았다.아주 간단한 계산이었다. 한번 눈치채니 행운은 어디에나 있었고 이제껏 허투루 지나쳤던 평범한 하루가 못내 아쉬웠다.


가혹한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하지 않으며 어쩌면 편의도 많이 봐주고 내 편에서 오랜 시간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백 명의 환자를 보며 우리가 별 탈 없이 이번 한 달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 아침 비록 눈 앞에서 버스를 놓쳤지만, 예상보다 일찍 온 다음 버스를 타고 유독 빨리 나온 커피와 함께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정말로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별거 아닌 작은 일상도 이를 지탱하기 위해 온 우주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 더 이상 간과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재수 없는 날의 불운보다 평범한 하루의 행운을 더 많이 곱씹는, 감사로 가득한 사람이고 싶다.


2022. 12. paris


매거진의 이전글 한의사와 점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