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눈을 봤다. 서울에 첫눈이 온 것은 여러일 전이지만 내가 만난 것은 이것이니 그를 첫눈으로 삼겠다.
오랜만에 친한 언니를 만나 꽃 시장에 가서 꽃 한단을 사고 가벼운 브런치를 먹었다. 양재천을 따라 자리한 여러 카페들 중에 메타세콰이어가 보이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작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꽤 로맨틱한 오후의 낮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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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헤어지고 대중교통으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종로의 한 카페를 찾았다. 서순라길에 위치한 그 카페는 언제 와도 마음이 편안하다. 이곳에서라면 어떤 생각이든 나답게 다듬을 수 있을거라 막연히 생각하며 하루키의 책을 읽고 고양이의 등에 쌓이는 눈을 바라본다.
일요일에는 숫자로 점철된 진료 평가를 한 무더기로 받았다. 화요일에는 내 것이 아닌 소란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소요가 있었다. 그래서 양일간 글쓰기가 어려웠다. 일의 기쁨과 슬픔까지 모두 기록해야겠지만 아직은 슬픔을 그만큼, 딱 내가 느끼는 온도만큼 기록해 내는 일은 능력 밖이다.
스스로를 변명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상황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며 평생 알량한 자존심 뒤에 숨어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거기에 나오는 숫자 몇 개가 나와 우리가 지어가는 진료 모두를 대변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삶이 주는 문제라면 어떻게 풀어가야 나 다울까 고민해 보는 것이다.
나는 꽤 설득력 넘치는 사람이니 이것은 설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비겁한 사람일 수도, 다른 무엇보다 책임을 지우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순간에 한발 빼는 모습이나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때에도 주춤하는 버릇은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최대한 큰 생각을 더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테지. '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열심히 한번 해보아야겠다', 정도의 온도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번 생에 완성형으로 살긴 글렀으니 뭐가 됐든 성장형 인간이 되어보자고. 아무쪼록 힘들어도 글쓰기를 놓는 사람이 되진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