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버텼다. 한약을 안 지어먹은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그보다 더 자주 앓는 날이 많다. 한의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어렸을 때는 두통이 심해 매일 진통제를 욱여넣으며 지내는 날들이 많았고 위염과 장염을 달고 살며 사시사철 알레르기 비염과 코감기로 고생했다.
나의 10대는 이렇게 흘러갔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 한의사가 되었으니 몸도 건강하고 잔병 치레는 더 이상 겪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초면인 증상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요즘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새벽에 발생하는 두통과 메스꺼움이다. 이상하게도 기상 시간보다 앞서 눈을 뜨면 한기와 두통, 미식거림을 느끼며 잠을 설치게 되는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증상은 다시 한두 시간 잠을 청하면 쉽게 사라지곤 해서 몸을 따뜻히 하면 금세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냉증까지 추가되고 나니 더 이상 찬찬히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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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약국에 가면 내가 호소하는 수만 가지 증상에 맞는 수만 가지 약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해당 증상을 빠르게 없애기 위해 일단 내 몸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거나 무마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몸의 불편감은 대부분 몸이 내는 볼멘소리다. 산발적으로 나타난다고 느끼는 증상도 모두 하나의 경향성 안에 있으며 이러한 단서들을 잘 따라가다 보면 분명 몸이 이곳저곳 아픈 것에 대한 일차적인 원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라는 처방을 지어 보름간 복용하기로 했다. 복용할 때마다 몸이 모든 부분에서 아주 편해지는, 내게 있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약이 바로 이것이다.
한의사가 아니었다면, 한의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약 한 줌 입에 털어 넣으며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삶에서 한의학을 만난 것은 내게 있어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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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말아야할 것은 몸에 딱 맞는 한약을 매일 정성 들여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평생 건강을 보장할 순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진시황과 불로장생처럼 허황된 꿈이며 건강한 삶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섭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에 종종 오만하여 비교적 다른 이들에 비해 건강 관리에 소홀한 것 같다. 이는 한의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 건강하지 않고 입으로만 건강을 부르짖는 한의사라니, 얼마나 모순적인지!
33살의 하루키는 문득 이제는 달려야겠다 깨닫고는 그 뒤로 40년간 매일같이 달렸다. 12월이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 것처럼, 나도 오늘부터 반드시 건강한 한의사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