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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Dec 07. 2023

삶의 모양이 결정되는 나이

연말이다. 쉬는 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1년간의 소회를 나누는 시간들을 갖고 있다. 나는 너른 인간관계를 가진 쪽은 아니어서 마음을 나눈 이들과 소소히 시간 쓰는 일을 좋아한다.


그들과 만나면 인간은 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함께 보낸 시간들을 더듬어 가다보면 얼마간 충만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만남이 전처럼 손꼽아 기다려지지는 않는 것 같다. 개원과 결혼, 부동산과 주식, 대출과 이자 등 지금 우리가 나누게 되는 주제들이란 이런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만남들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냐고 물어온다면 나도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랑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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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숫자 몇 가지를 붙여놓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에 아파하며 한숨을 쉰다. 결국 허허실실한 이야기들로, 조금 있으면 기억에서 흩어질 그런 가벼운 것들을 부러 골라 내 몫을 소진해버린다.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들 속에서 자꾸만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는 시간이 싫다. 어느 대단한 사람의 연보에 쓰인 내용들처럼, 우리의 매일이 입신양명과 관혼상제로만 기록되는 것이 조금은 슬프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저 우리가 가진 것들을 정성껏 이야기하고 싶다면.

손때묻은 보석함에서 조심스레 꺼낸, 누군가의 애정 어린 취향과 삶의 재미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 나이 서른 둘. 각자가 살아갈 삶의 모양이 조금씩 결정되는 나이일 것이다. 다만 내 것의 연보는 작고 반짝이는 보석들로 가득하길 바란다. 이것이 한해의 마지막에 내가 그리는 행복한 삶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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