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자 Feb 10. 2023

그래도 나는 안수영이 부럽다

'사랑'이라는 계급에 대하여

 매번 그녀의 행동에는 물음표가 따라 붙었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그 고백을 그냥 받아들이면 안되는 걸까. 그녀는 매번 무엇때문에 머뭇 거리게 되는 것일까. 물론 그의 행동에도 궁금한 점은 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왜 멈칫하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늘 한결같을까. 


 '사랑의 이해'는 어떻게 보면 '사랑의 확신'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어떤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고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다. 감정은 누구나 들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결단에 따른다. 그리고 행동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한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어도 애써 종종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생긴다. 사랑이라는 변수에 인생이 흔들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그 감정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두근거림이고, 누군가에게는 연민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켜야하는 책임감이며, 누군가에게는 꼭 가져야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에 다 해당될수도 있고, 몇스푼씩 조금씩 섞인 것일 수도 있다. 예를들어 수영이 종현에게 가졌던 감정은 연민에 가깝고, 상수는 수영에게 책임감 앞에서 머뭇거린다. 미경은 상수에게 가져야할 욕망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처럼 각자 사랑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의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작품은 초반에 사랑에도 자본주의적 계급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주목받았다. 굉장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고졸 출신 수영은 상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종현은 비슷한 감정을 수영에게 느낀다. 상수는 재벌집 딸인 미경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 


 주변에서 돈과 사랑을 연관짓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일견 맞는 부분도 있지만, 사랑의 감정이 꼭 경제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미경은 돈으로도 상수의 마음을 잡을 수 없었고, 종현 역시 자신을 지원하는 수영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기 쉽지 않았다.  


  상수와 수영.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계급이 존재한다. 사랑이라는 계급에서는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상수는 더 약자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존심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그녀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우위에 선 듯한 그녀가 부러웠다. 사실 불행한 상황 속에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수영은 행복해지는 법을 잘 모른다. 대신 자기를 지키려는 방어기제로 상황에서 물러서는 회피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수영에게 반한 상수는 그녀가 어디에 숨어도 귀신같이 찾아내고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한결같은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끈을 놓지 않는 하상수 덕분에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마주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 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수영에게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행운아다. 대부분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부분이 있으면, 쉽게 포기해버리는 시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포기하지만 상수는 (그 역시 불안하지만) 끈을 놓지 않았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면서 성장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찌보면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두려움의 또다른 이름이기에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 불안감 등을 마주하고 그런 것들을 극복할 때 한층 성장하고 또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주인공들은 4년여의 시간을 지나며 서로의 감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확신에 다다랐다. 그 과정에서 한뼘 더 성장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지만, 결국 시간이 그 답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흔들리는 감정위에서 쌓인 모래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본이 더 단단하게 닦여야하기에 흔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쨌든 늘 모범생 인생을 살아온 상수는 사랑이라는 변수에 대응하는 법을 아는 유연한 사람이 됐고, 자신을 둘러싼 불행앞에서 늘 부정적으로 생각해온 수영은 '내일의 행복'이라는 말처럼 행복을 선택하기로 조금씩 노력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통해서 자신만의 틀에서 벗어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게 된 수영이 조금은 부럽다. 사랑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가득찬 시대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을 수 있게 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