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돈만 벌고 싶지는 않다
퇴사 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돈'이다.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사람도 주변에 많다. 아직 퇴사한 지 1년도 안 되었건만, 지금 얼마를 버는지, 살 만 한지, 후회하지는 않는지, 월급이 아쉽지 않은지, 굶어 죽지는 않았는지 궁금해한다. 물론 퇴사를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나는 어릴 때부터 돈이 중요하다는 것,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막상 회사를 다닐 땐 '돈'에 대해 좀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월급이 통장에 숫자로만 적혔던 탓일까. 월급이 들어오기 전과 후, 그렇게 한 달에 고작 몇 번 나의 재정상태에 대해 생각(점검)했던 것 같다. 내가 지출하는 비용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제적 관념이 부실했던 나의 개인적 특성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월급생활을 청산하고 나니까, 내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산다는 것은 돈이 든다"라는 사노 요코의 말이 실감이 났다. 돈, 필요하다. 심지어 필수 불가결하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지만, 죽어라 돈만 벌고 싶지는 않다. 돈만 벌다가 죽을 수도 있다. 대부분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오로지 미래를 위해 과로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랬으니, 그들이 바라는 행복의 미래가 찾아왔거나 찾아와야 한다. 그런가? 그랬는가? 그럴 건가? 나는 이 부분에 크게 동의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자녀들이라도 행복해졌는가? 그들의 삶의 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리도 돈을 위해서, 우리 자식을 위해서, 미래에는 좀 나을까 싶어서, 재미없어도 싫어도 더러워도 죽을 것 같아도 회사에 가고 야근을 한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내가 되라고' 그렇게 온 정성과 시간이 바쳐왔는가. 그런 걸 생각하면 세상이 억울하고 분할 따름이다. 내가 너무 비극적인가.
결론은, 돈은 벌어야 하는데, 돈만 벌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물론 회사생활을 하면서 즐거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퇴사를 고민했던 당시에 '회사를 왜 다니고 있는지' 스스로 물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돈'이었다. 다른 의미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앗, 매일 아침 좀비처럼 출근해서 돈만 벌고 있었네. 그놈의 돈, 다르게 벌고 다르게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탕진잼'은 못 누리더라도, '욜로'의 맛은 좀 느껴보자며.
퇴사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수입이 줄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회사 다닐 때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딘가에 매여있지도 않다. 무언가를 시도해볼 여유도 주어졌다. 그걸 고려한다면 지금의 수입이 오히려 적지 않게 느껴진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하는 만큼'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있는 만큼 쓰는' 타입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해 지출도 많이 줄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출하는 비용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저녁 먹고... 그중에는 내가 정말 좋아서 지출한 비용들도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혹은 인간관계를 위해 눈치껏 쓴 적도 많았다. 가장 큰 건 '시발비용'이라는 거였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스스로 위로해주자면서, 쇼핑몰을 뒤지며 맘에 드는 아이템을 끝끝내 찾아내려 애썼다. 생각해보면, 그땐 그게 거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것에 눈길이 잘 안 간다. 저절로 그렇게 됐다.
누군가가 "불안하지 않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불안합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회사생활을 한들 불안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루틴한 생활에 매몰되어 잘 느끼지 못했을 뿐. 이 불안함, 이 불안정성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뭐해 먹고살지 계속 고민하게 만들겠지. 불안과 고민을 반복하면서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궁금하고 설레고 또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