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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Dec 31. 2020

순자씨 뒤통수치기

제 8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 소감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슬픔이나 기쁨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그의 표정에는 시간이 응축돼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아주 조그만 구멍과는 달리 그 속엔 이미 하나의 세계가 자리 잡은 개미집처럼. 그래, 딱 개미집처럼 그의 눈동자 너머로 너무 많은 시절이 펼쳐져 있던 것이다.

   "결과적으론 우리 아빠 뒤통수를 내가 졸라 세게 때린 셈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가.

   "기분이 어땠어요? 좋았어? 통쾌했어?"

   "아니. 그럴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났어. 막 울었어. 아파서."

   아버지가 반대하던 일을, 더 정확히 말하면 무작정 응원할 수 없던 일을 끝내 자기 힘으로 어느 위치까지 이룬 그였다. 그 지난한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끝이 보이지 않았을지 나로선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가 결국엔 자기 아버지의 뒤통수를 쳤다는 것, 그것도 졸라 세게 쳤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또 먹먹했다.


   그러니까 나도,  나도.



   순자씨가 대뜸 그런 말을 한 건 몇 해 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 못 버는 직업이 작가래. 일 년에 564만 원."

   때는 내가 운 좋게 첫 책을 출간한지 몇 달이 지난 후였고 인터넷에 내 이름과 책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린 순자씨는 혹시라도 하나 있는 딸이 전업 작가가 되길 희망할까 봐 너무 두려웠던 거다.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것도, 전업 작가가 된 것도 아닌 그저 희망하는 마음마저도 너무나.

   

   시대의 흐름을 잘 탄 덕에 그야말로 운 좋게 출간만 했을 뿐, 나는 작가도 작가가 아닌 것도 아녔다. 여전히 취업을 생각해야 했고, 여전히 모든 것이 불투명했으며 여전히 가난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은 책을 출간한 뒤 더 심해져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간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틈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현실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 갔으나 그건 순자씨의 불안만 부추길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독립출판을 준비하느라 하루 수면 시간이 두 시간도 채 안 됐을 때, 그날도 난 퇴근을 해서 새벽 세 시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때문에 잠이 깬 순자씨가 훤히 불이 켜져 있는 내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그랬다.

   "그거 네 인건비나 나오는 거냐? 몸이나 안 상하면 다행이지."

   그때 내 마음이 어땠더라. 화가 났나. 아니면 억울했나.

   그녀의 모진 말이 걱정에서 나온 말이란 것쯤 아는 나이였으나, 만약 그렇다면 더욱이 순자씨의 뒤통수를 세게 칠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한다고 다짐한 새벽이었다.



   브런치로부터 브런치북 대상 수상 메일을 받은 그 말도 안 되던 날에 나는 우세모를 같이 쓴 다정이와 아주 긴 통화를 했다. 우리가 드디어 글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가 쓰고자 하는 글이 우리만 좋은 건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계속 글을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통화였다.

   그러면서 다정이는 그랬다. 이미 한참 전에 이슬이와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 부모님께 선전포고했으며 오늘의 대상 소식 역시 전했노라고. 아주 많이 기뻐하셨다고.

   그리고 그때까지도 난 순자씨에게 이 소식을 전할 마음이 단 한 톨도 없었던 거다. 알려봤자 돌아올 반응이란 게 내가 너무나 예상 가능한 것이라 믿었으니까.

   '그게 되면 그래서 뭐가 좋은 건데? 안정적으로 돈 벌 수 있는 거야? 문학적으로 인정받는 거야?'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날.

   둘이서 보내는 모든 빨간 날이 그렇듯,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당혹스러움과 그럼에도 뭐라도 하지 않고선 둘이라는 숫자가 더 초라하게 느껴져서 살이 두툼한 가자미를 구웠다. 나물도 좀 무치고 미역국도 팔팔 끓였다. 크리스마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지만 둘의 저녁상으로는 부족하지 않게.

   배부르게 밥을 먹고는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바가지 가득 까먹었다. 티브이에서는 성탄절 특선영화로 이미 여러   영화가 방영 중이었고 나는 절대 장난이 통하지 않을  같은 사람을 상대로  장난을 계획하는 악동의 마음으로 그러나 애써 평온한 목소리로 회심의 한방을 날렸다.


   "엄마. 카카오라는 회사 알아?"

   (순자씨는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잘 모를 확률이 높았다)

   "응. 알지. 카카오톡. 카카오뱅크도 있잖아."

   "어. 맞아. 대따 큰 곳이야. 네이버랑 비등비등해."

   "카카오는 왜 갑자기?"

   "거기서 브런치라는 글 관련 플랫폼을 운영하거든? 음. 그러니까 사업 같은 거지."

   "응. 근데?"

   "그 브런치에서 매년 브런치북이라는 공모전을 열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출판사 10곳이 심사를 보는데 한 출판사 당 한 작품을 선택하는 거야. 거기서 뽑히면 카카오에서 상금도 주고 출판사랑 출간 계약도 해. 책이 나오면 카카오에서 마케팅도 해주고. 카카오를 등에 업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해가 돼?"

   "응. 그런데 그게 왜."

   "내가 사실 다정이랑 그걸 준비했거든. 다정이 알지? 시간이 빠듯해서 악착같이 했는데 그게 뽑혔어 엄마. 이미 저번 주에 출판사랑 계약서도 썼어. 나, 대상이래."

   "......"


   갑자기 들이닥친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이 십 초쯤 됐으려나. 그 억 겹의 시간 동안 악동의 마음은 어땠나. 즐거웠나? 통쾌했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나? 아팠나?


   결과적으로 나는 순자씨의 뒤통수를 절반쯤 친 게 됐다. 그녀가 조금은 어색한 얼굴로, 그러나 기쁨이 다 숨겨지지 않는 얼굴로 날 향해 박수를 쳐주었기 때문이다.

   딸의 그러고 싶음을 꺾지 않고, 걱정은 잠시 넣어둔 채 누구보다 대책 없이 응원할 수 있는 날이 그녀에게도 너무 필요했을 것이다. 순자씨가 내게 보낸 낯선 박수는 대책 없는 응원의 첫발을 뗀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이기도 했다.


   그녀가 브런치 화면에 뜬 대상 페이지를 보며 두어 번쯤 우리 세계의 모든 말... 우리 세계의 모든 말... 하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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