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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Jun 21. 2021

우리의 축축하고 빛나는 세계

'우리 세계의 모든 말'을 출간하며

   의료 사기를 당했다. 첫 책, 취급주의 출간을 딱 일주일 앞둔 날에.


   그때 나는 사격장과 노래방 기계가 있는 오락실에서 하루 11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치과에 다니고 있던 최보에게서 대뜸 이렇게 메시지가 온 거다.

   “야. 기사 봤어?”

   무슨 기사일지 도통 모르겠는 내가 자판을 느리게 두드리는 사이 최보에게서 메시지 한 통이 더 날아왔고 그것이 곧 닥칠 불행의 시작이란 걸 그땐 몰랐다.

   “미친. 기사 봤냐고.”


   피해자는 무려 2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2만 명 안에 나와 최보가 있었다. 출간을 5일 앞둔 날엔 책임질 사람이 없는 치과 로비에서 모르는 아주머니와 껴안고 울었다. 모르는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모르는 언니와 같이 항의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몇 권의 책을 팔아야 교정 사기로 날린 돈을 메울 수 있는지.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렸고 그건 자신 없는 권수였다.


   우세모를 쓰는 동안 다정이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근데 이거 잘 될까?’였다. 최종의 최종의 또 최종 원고를 넘기며 편집자님께 제일 많이 한 말은 ‘많이 팔고 싶어요.’

   이번엔 교정 사기를 당한 것도, 당장에 갚아야 할 큰돈이 있는 것도 아녔는데 그랬다.


   석 달 전, 다정이와 참여했던 어라운드 매거진 인터뷰가 끝나고 다정이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는 네가 돈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걱정이 되는 거야. 혹시나 사람들이 널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일부러 돈 얘기를 안 했어.”

   내가 무슨 돈 얘기를 했더라. 쓰려는 책이 안 팔린다고 하면 안 쓸 자신도 있다고 말했나.

   만약 사람들이 내게 무언가를 오해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돈과 연관된다면 그건 더는 오해가 아닌 게 된다. 명백한 사실이므로.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날 밤에는 기분이 더럽다. 다르게 말할 수도 있지만 더러운 게 맞다. 몇 배의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계약을 파기하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지 않다. 그건 곧 마주할 결과치(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 또는 시장의 반응) 때문인데,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내 글에 자신이 있는지, 내 글을 사랑하는지, 이런 나의 입장과는 별개라는 소리다. 과정만 있다면 행복할 텐데.


   그러나 어젯밤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복하다. 다정이와 내가 쓴 글이 좋게 읽힐지 그래서 잘될지 많이 팔릴지 이런 걸 깜빡 잊을 만큼 행복하다.

   물론 완전히 잊진 못해서 나와 다정이는 2주 전부터 온갖 꿈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것은 때로 흉몽이었고 엄청난 길몽이기도 했다가 개꿈일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조건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뭔가가 될 것 같다고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향한다고 열심히 징조를 만들어냈다.

  서로가  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너무  알아서였다.


   판은 내가 깔았지만, 다정이가 멱살 잡고 끌고 온 우리의 책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책을 준비하며 있었던 많은 일을 여기에 다 말할 순 없지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갑옷을 입고 늠름하게 우리를 이끈 우세모 용사들 덕에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우리 세계의 모든 말」 김이슬∪하현 지음.

  어쩌면 제목을 다시 지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들 세계의 모든 말」 우리들 지음.


   우리 세계를 해치지 않고 온전히 세상으로 꺼내준 카멜북스 식구들, 우리만 있던 세계에 기꺼이 놀러 와 준 사랑하는 시인 양안다와 사랑하는 친구이자 작가 김여진 그리고 나의 다정이.


   우리들의 책이 잘 되고 많이 팔리길 바란다. 깊이 읽히고 오래 읽히길 바란다. 그래서 더는 우리가 쓰는 일을 떠올릴 때 허기지지 않기를.

   당신이 나에 대해 무언가를 오해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돈과 연관된다면 그건 더는 오해가 아니게 된다.


   우리의 글쓰기가 우리의 생활을 책임져주길 너무나도 바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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