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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27. 2024

두 번째 회귀 21- 사업 계획

기남이 유학을 떠나기 얼마 전 그들은 방 4개를 구비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각자의 방을 드디어 갖게 된 거였다.

그리고 기남이 유학 가 있는 동안 지우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인희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인희는 닭 튀기는 냄새는 신물 난다고 이번엔 닭갈비 가게를 차렸다. 

지우는 인사성이 밝고 기억이 뛰어나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손님의 얼굴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언제 누구와 왔던 것까지 기억해 안부를 물으니 손님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기남이 유학 당시 편지로 넌지시 지우에게 하고 싶은 일을 물어봤지만, 지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해서 기남은 더는 지우 진로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기남은 자기 방에서 쉬다 깜박 잠이 들었다.

시차 때문에 밤늦게 다시 눈이 떠졌고, 그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나갔다.

식당 의자에 연주가 앉아 있다, 기남을 보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힘들었지, 유학 생활?”

“아니! 좋았어! 넌 직장 생활 어때?”     


연주가 약간 주춤하다 입을 뗐다.     


“나야 뭐 너에 비하면 거저먹기지! 뉴욕 좋았어?”

“응. 양면성이 있지만 내겐 기회의 땅이었지! 배운 것도 많고!”
 “뭐가 제일 좋았어?”

“월가가 있으니 아무래도 경제에 대해 제대로 보고 배울 기회가 있었다는 거?”

“역시 넌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확실하군!”

“그런데 넌 무슨 일 하는 거야?”

“뭐 그냥 조그만 회사 다녀. 그나저나”     


연주가 급히 화제를 돌리려 하자 기남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연주가 말을 이었다.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자!”

“그래. 그럴게.”     


***     


기남을 맞은 남두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어렵다는 MBA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끝마쳤냐? 내 아들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아버지 건강 많이 좋아지셨단 소식은 들었는데 이젠 괜찮으신 거죠?”

“응. 신기하게 암세포가 다 없어졌대. 이젠 정남 에미 들볶는 거랑 정남이 속 섞이는 것만 빼면 만고 땡이다!”

“정남인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여전한가요?”

“그게... 이젠 나이도 먹었겠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없으니 땡깡이 더 심해지고 있어. 어째야 좋을지 나도 모르겠다.”

“제가 한 번 만나서 타일러 볼게요.”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 말은 했지만, 기남은 그가 말로 될 인간이 아니라는 걸 진즉에 알았다. 해서 기남은 이참에 그도 완전히 개조할 생각을 했다.

행위는 괘씸하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고심하는 걸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남두철이 생각에 젖어있는 기남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이제 어쩔 거야? 회사에서 일할 거지?”

“저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거든요.”

“응?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스타트업 벤처 사업이라고....”

“뭐? 스타트 뭐?”

“아버지 회사는 이미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사업체니 제가 가끔 조언해 드리는 정도면 그대로 잘 유지될 듯싶거든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새로운 사업을, 그것도 아직은 위험부담이 큰 그런 일이거든요.”

“왜 위험부담이 큰일을 하려는 건데? 안정적인 게 낫지 않나?”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위험부담이 크다는 건 그만큼 기회도 많다는 얘기니까요.”

“난 이해가 좀 안 되지만 공부하고 온 네가 나보다야 훨씬 많이 알겠지! 아무렴!”

“이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게 될 겁니다. 보세요! 곧 소련연방이 무너지고 둘로 나뉜 독일이 합쳐질 거고요.”

“뭐? 소련이 없어지고, 독일이 통일한다고?”

“네!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요!”

“역시! 외국물을 먹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세상 일에 훤해지는 거!”     


물론 뉴욕에서 많은 걸 보고 들은 건 맞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남이 이전 삶에서 이미 겪은 일들을 말한 것이었다.

기남이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세상사를 보는 게 더 명확해진 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이미 살았던 삶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직접 공부하고 부딪혀 본 경험까지 기남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거 같았다.

남은 건 이제 그것들을 이용해 실전의 경험을 쌓는 것뿐이었다.

해서 그는 국내 동향과 돌아가는 판세를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 날 기남은 박흥식을 만나러 검찰청 근처 식당으로 들어섰다.

기남이 들어서자 박흥식이 손을 들어 그를 환영하곤 일어나 그에게 달려왔다.

박흥식은 기남을 얼싸안고 등을 도닥였다.     


“짜식! 정말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우리 둘 다 자기 몫을 하는 날이!”     


그는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눈빛에는 여전히 총기가 가득했고, 수수하면서도 소박한 맛도 여전했다.

둘은 마주 앉았고, 박흥식이 곧 너스레를 떨었다.     


“야, 오랜만에 귀국한 너한테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더니 겨우 설렁탕집이 뭐냐?”

“여기가 찾기도 쉽고 그동안 설렁탕 무지 그리웠거든!”

“뉴욕에도 한식당 많다던데 설렁탕 못 먹었어?”

“거기 맛하고 여기 맛이 같나? 흐흐. 형 잘 지냈지? 신수가 어째 더 훤해졌는데?”

“너 없는 동안 나 세 아이 아버지 됐잖아!”

“그러니까! 와! 세 아이 아버지라니!”

“말도 마! 사내아이들만 셋이라 집안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그래도 좋지?”

“말해 뭐 해! 흐흐. 너도 이제 가야지?”

“어? 어떻게 알았어?”

“정말? 여잔 있고?”

“뭔 소리야?”

“어떻게 알았냐며?”

“아, 난 또... 그 소리였어? 난 군대 가야 된단 얘긴 줄 알았지. 흐흐.”
 “너야말로 오랜만에 만나 뭔 소리야? 미국 갔다 오더니 한국말 실력이 팍 줄었구나? 아니, 감이 죽은 건가? 흐흐.”
 “그래. 형 말대로 둘 다 죽은 거 같다, 형!”     


둘은 유쾌한 농담으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     


귀국 후 지인들을 만난 다음 기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석사장교로 군 생활을 마치는 거였다.

6개월 훈련을 마치고 바로 전역한 뒤 기남은 자신이 구상했던 사업을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뉴욕 유학 시절부터 앞으로는 IT와 반도체 산업, 그리고 연예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크게 번창할 것을 예측했다.

자신은 경제와 경영을 공부했지만, 뉴욕 유학 생활 동안 본인 눈으로 확인한 성장 가능성 1위는 그쪽이었다.

우리나라 여건을 고려해 봤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사업도 바로 이들 사업이라고 여겨 일찌감치 정완수에게는 IT와 반도체 산업을 권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연예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자신의 사업으로 정했다.

기남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외로울 때 책 외 기남을 달래줬던 건 음악이었다.

당시 그는 주로 미국 팝을 들었었는데 그 이유는 일상과 사유를 리듬에 담아내는 그들의 방식이 맘에 들어서였다.

해서 그는 영어 공부도 할 겸 미국 팝을 즐겨 들었었다.

70, 8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을 빼면 우리 가요는 사랑 타령이나 일삼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본인이 살았던 97년까지를 떠올렸을 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가요가 일취월장했던 걸 기억해 냈다.

미국 유학 시절 MTV의 위력을 본 기남은 앞으로 문화 코드는 무한 성장이 가능하단 걸 확신했다.  

   

‘우리도 좀 더 세련되고 세계적으로 먹힐 그런 아티스트를 발굴해야 해!’     


그는 자기가 한창 살기 바쁠 당시 남자 그룹 ‘HOT’를 떠올렸다.     


‘듀엣도 아니고 사중창단도 아닌 다섯 명의 미소년들이 인기를 휩쓸었었지!’     


기남은 이제 자신이 주도해 우리의 가요를 세련되게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그전에 그는 다소 회의감이 들었다.     


‘민식, 윤식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을 텐데 내가 이게 무슨 짓이람!’     


그러다 또 그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는 듯한데 이쯤 다시 과거로 회귀를 해야 하나?’     


마음속 혼란을 애써 잠재우며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서는 기남의 눈에 인희와 지우가 몹시 떨고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어색하게 말을 잇는 인희 모습과 그 옆에서 당황스러워하는 지우를 보면서 기남은 뭔가 잘 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인지.”     


인희가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곤 입을 뗐다.     


“사실 너 걱정할까 차마 말하지 못했었는데... 연주가 좀 이상하다 싶더니 요즘 아예 집엘 들어오지 않아.”

“네?”     


기남은 산 넘어 산이란 게 바로 이런 경우구나 싶었다.

자신이 현생의 가족과 미래의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 쏟기로 맘먹고 이제 막 첫 삽을 뜨려는 순간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걸 느꼈다.     


‘몇 번의 삶을 다시 살아도 벗어날 수 없는 게 운명이란 말인가?’     


기남은 처음으로 힘이 빠졌다.

그리고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삶을 끝내고 싶어졌다.

그때 지우가 뭔가 생각난 듯 흥분하며 입을 뗐다.     


“나 알 거 같아요!”     


기남과 인희의 눈이 지우에게로 향했다.

인희가 조급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재촉했다.     


“그래 아는 거 있음 다 말해 봐 지우야.”

“누나... 지금 교회에 있어요!”

“교회?”     


그 말과 함께 기남은 꽤 오래전 연주가 교회에 열중했던 적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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