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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Nov 03. 2024

세 번째 회귀 1- 계약 결혼

기남은 지금까지의 회귀 생활을 정리해 봤다.

처음 과거로 돌아갔을 때 자기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 즉 인희와 함께 했던 날 중 자신이 중 2였을 때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그 사나이가 말했던 거래 대로 생명을 구했는데 자그마치 박흥식을 포함 네 명의 생명을 죽음에서 구해냈다.

위급한 상황에서 생각을 집중하므로 상대의 생각을 제어하고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사용했다. 

거기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상대를 육체적으로 제압하는 것도 포함됐었다.

인희가 변동수에 의해 살해되자 자신은 두 번째 회귀를 결심했고 실행했다.

그 결과 인희를 다시 살려냈고, 미국 유학 중에는 총을 든 살인마를 제어해 수십 명의 생명을 지켜냈다.

당시 외국어를 현지인처럼 술술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두 번째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은 한 번 사용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귀 때마다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경험으로 알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 능력을 사용한 후 피곤함이 엄습한다는 것도 함께 알아낸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추진하는 여러 사업은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고 있고, 순하게 변한 정남을 잘 가르쳐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게 하겠다고 아버지와도 벌써 의논을 끝냈으니 됐긴 한데...’     

하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또 다른 가족 중 한 명인 연주가 목숨을 잃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자살로 위장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연주를 다시 살려내려고 맘먹은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에 대한 응징은 세 번째 회귀를 단행한 후 결행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참에 연주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남은 조용히 눈을 감고 오른손에 주사위를 쥔 채 10초간 숨을 멈췄다.     


***     


기남이 눈을 떴을 때 맨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천장이었다.

자기 방이었다.

기남은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연주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아직 시차 때문에 힘들 텐데!”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며칠 후가 분명했다.

기남은 인희와 지우를 찾았다.     


“엄마랑 지우 가게 나갔어.”

“넌? 넌 일하러 안 나가?”

“생각 중이야!”

“무슨 생각?”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닌 거 같아서.”

“하는 일이 뭐라고 했었지?”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 하는데 사실 박재국이 억지로 하라고 해서 시작한 건데... 거기 목사가 좀 이상해!”     

이 말에 기남은 연주가 아직 정명식에게 일을 당하기 전인 듯해 우선 안심했다.

그리고 이전 생에선 연주가 피하는 듯해 묻지 못한 말을 물어봤다.     


“근데 아무리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어도... 교회 일 말고 좀 더 나은 일 할 수 있지 않나?”

“사실 지우 땜에 결정한 거야. 그 인간이 또 지우 해코지할까 봐.”

“혹시 나 없는 동안 또 무슨 일 있었던 거야? 편지엔 통 그런 말 없었잖아.”

“공부하는 너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말하지 않았어.”
 “연주야!”     


기남이 연주를 나지막이 불렀다.

연주가 평소와 다른 기남의 목소리와 분위기에 잠시 주춤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너 아침 뭐 먹을래? 아메리칸 스타일로 해 줘?”

“연주야!”     


이번엔 기남이 조금 전보다 더 부드럽게 연주 이름을 불렀다.

연주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거칠게 응대했다.     


“왜? 뭐?”

“할 말이 있어!”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만에 기남과 연주는 결혼식을 올렸다.

인희와 지우는 좋아 어쩔 줄 몰라했고, 박재국은 아까운 먹이를 빼앗긴 하이에나 마냥 심드렁한 표정을 결혼식 내내 보여줬다.

하물며 신부 입장 후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건네기 전 한참 뜸을 들여 내외귀빈들의 원성과 야유를 들어야 했다.

기남 아버지 남두철은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 연신 싱글벙글 거리며 손님들 맞기에 정신이 없었다.

계모인 진희는 애써 표정 관리 중이었고, 순둥이가 된 정남은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     

결혼식이 치러지기 며칠 전 기남은 연주와 결혼하기로 합의한 후 바로 성북동집을 찾았다.     


“미국 유학도 다녀오셨겠다.... 곧 회사도 차린다지? 돈은 어디서 나서?”     


지난번과 똑같은 말을 씨부리며 거들먹거리는 정남을 보자마자 기남은 그의 머리통을 냅다 갈겼다.     


“어머! 너 미쳤어?”     


진희가 죽일 듯이 기남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정남이 일어나며 진희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배 고파요.”     


이 또한 지난번과 하나도 변한 게 없는 멘트였다.

이로써 기남은 정남을 다시 한번 완전히 개조했고, 진희 바람 건은 그대로 넘겼다.

어차피 정남은 피를 나눈 형제고 아버지를 위해 한 일이었지만 진희는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겨서였다.

그동안 아버지 남두철이 진희 속을 썩게 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냥 넘기는 편이 ‘페어’ 하단 생각도 진희에게 손을 안 대는데 한몫했다.

그렇게 집안 단속을 다시 한 기남은 아버지 남두철에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렸고, 이젠 그야말로 세 번째 인생에 충실하기로 맘먹고 연주와의 결혼을 단행했다.     

저 멀리서 박흥식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기남 곁에 다가와 기남 아버지와 계모에게 인사한 후 기남 어깨를 두드리며 감개무량함을 드러냈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내 진작 알아봤었지! 오연주 씨랑 결혼할 거 말이야. 하하!”     


어색함을 숨기려고 기남이 애를 쓰자 박흥식이 기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경험상 첫날밤 너무 힘을 빼면 안 되더라고. 두고두고 사랑 나누고 첫날은 적당히! 알았지?”     


기남의 귀가 벌겋게 물들기 시작하자 박흥식이 다시 한번 더 속삭였다.     


“너희 둘 진작 사랑 나눈 건 아니겠지? 어메리컨 식으로?”     


기남이 말을 못 하자 박흥식이 크게 외쳤다.     


“진작 했네! 했어!”     


박흥식은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린 뒤 다시 한번 기남의 어깨를 두드리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사라져 가는 박흥식을 바라보며 기남은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어떻게 결혼식이 진행됐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기남과 연주는 정신이 없었고 피곤함을 느꼈다.

결혼식 모든 절차를 마친 후 기남과 연주는 혼이 빠진 상태에서 신혼여행지인 제주도로 떠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 나란히 앉은 기남과 연주는 말없이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기남이 먼저 입을 뗐다.     


“내 말에 따라주고 무사히 결혼식까지 마쳐줘서 정말 고마워.”

“고맙긴. 내가 오히려 고맙지.”     


연주가 힘없이 대답했다.

기남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애써 참았다.

그때 연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계약 결혼이라지만 그래도 결혼식을 올리고 나니 좀 그렇다. 유부녀가 됐다니 내가!”

“이제 넌 네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살면 돼. 난 사업에 매진할 거구 넌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좋은 가정 꾸리자고.”

“그래. 그러자. 우선 엄마 하시는 사업 도우면서 천천히 생각해 볼게.”     


잠시 후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둘은 다른 신혼부부 커플들 틈에 끼여 공항을 빠져나왔고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기남과 연주는 호텔 방에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어색함에 당황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호텔 주변이나 산책할까?”     


기남이 제안하자 연주는 침대 끝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게 좋겠다!”     


둘은 각각 욕실과 룸 모서리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실에서 예복을 들고 나오던 연주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있는 기남을 보곤 다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옷 입어 본 적도 없고 취향도 아니라서 정말 힘들었는데 벗으니 너무 좋다.”

“나도 마찬가지였어. 결혼식 한 번 하지 두 번 할 건 정말 아니더라! 흐흐.”     


기남은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한 농담이었지만 그 말에 연주가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진짜 결혼해야지. 안 그래?”

“결혼은 무슨! 난 사업에나 올인하려고.”     


연주가 순간 눈을 반짝이며 얼굴에 화색을 드러냈다.

그러다 자기 표정이 들킬까 우려돼 다시 심각한 얼굴이 되며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나가자.”     


***     


기남은 한 달 전 연주에게 이런 제안을 했었다.  

   

“연주야!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

“너가 박재국 손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 거 같아.”

“그게 뭔데?”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랑 결혼하자! 결혼하면 아무래도 내 사람이니까 박재국이 더는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뭐? 결혼? 너랑?”     


기남은 살짝 서운함이 느껴졌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며 말을 이었다.     


“응. 네가 지금 당장 다른 사람 누구와 결혼할 수 있겠니? 물론 다른 방법은 너도 나처럼 유학 갈 수도 있겠지만 지난번 내가 말했을 때 단칼에 거절했잖아. 그러니까 이 방법밖에”     


연주가 기남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좋아! 하자! 계약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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