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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Dec 08. 2024

세 번째 회귀 21- 안개

세운상가에서 박한성을 만난 그날 기남은 박한성 팔 한쪽을 못 쓰게 만들고, 다리 한쪽도 못 쓰게 만들었다.

완전 못 쓰게 만들면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 부모에게 민폐라 기남은 그 정도에서 멈췄다.

부모와 사촌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던 박한성을 막은 기남은 얼마 뒤 또 다른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얼마 전부터 기남은 또 이상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다.

딱 봐도 나 범죄자! 스러운 인상을 가진 수많은 남자들이 계속 보였다.

그는 원래 생에서 그쯤 기억할 만한 사건사고를 떠올려봤다.     


‘맞아! 그 사건이 있었어! 아지트까지 지어놓고 범죄를 구상했다고 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었지!’   

  

기남의 기억으로 그 사건은 겉으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응해 벌어진 사건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부자들에게 원한과 분노를 가진 이들이 행한 그저 잔혹한 범죄였을 뿐이었다.

기남은 그들을 막고 그들 모두를 갱생의 길로 들어서게 할 참이었다.

가끔 연주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세상 모든 악을 구할 순 없는 노릇이야!”     


물론 기남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증오범죄가 자꾸 발생하게 되면 그 뒤를 이어 모방범죄가 뒤따르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사회는 이런 범죄에 둔감해져 간다.

그걸 아는 기남은 그렇게 되는 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세상의 범죄를 다 없앨 순 없어도 적어도 내가 막을 수 있는 건 막는 게 도리지! 아암!’     


그는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은 거의 최준혁 부장에게 맡겨놓고 언젠가부터 사건사고 막기에 주력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범죄의 재발생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도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서였다.     


‘이런 내 행동이 다소나마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면 정말 좋겠는데~’     


사실 시작은 기남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자꾸 같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걸 쫓다 보니 사건사고를 막아야겠단 생각에 미친 것이었다.

기남은 신을 믿진 않지만 기도했다.

자기 목숨을 살려 기회를 준 것도 그렇고, 분명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 혹은 힘이 있다는 것을, 그는 추호의 의심 없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남은 먼저 흉악범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박흥식을 찾았다.

기남을 보자 박흥식이 멀리서부터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선 입을 뗐다.     


“친히 이렇게 온 거 보니 또 부탁할 게 있으신 모양이군! 그렇지?”

“와 형, 점쟁이 해도 되겠는걸?”

“이번엔 뭔데?”

“내가 이름을 말해 줄 테니까 전과자 리스트에서 좀 찾아봐 줘. 분명히 있을 거야.”     


박흥식이 기남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이야. 너 혹시 신들렸냐?”

“아이 형, 뭔 그런 소릴!”

“그렇잖아? 신들리지 않고 어떻게 지금까지 네가 말한 인간들이 하나 같이 다 범죄자냐 이거야!”

“그게... 내가 말했잖아. 어설픈 예지력이 좀 생겼다고.”

“아냐! 확실히 이상해! 내가 아직 말하진 않았었는데... 너 예전에 박재국 만난 다음 바로 박재국 혼수상태 된 것도 그렇고...”     


박흥식은 이전의 생에서 자신이 만나게 해 준 정명식을 기남이 손본 것까진 당연히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이것까지 기억했다면 박흥식은 정말 기남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남은 반박했다.     


“형! 믿어줘! 이상하게 범죄자들이 내 머릿속에 불쑥 들어온다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길 가던 사람 붙들고 한 번 물어봐.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님 네가 이상한 건지.”

“알아! 그래도 형만큼은 날 믿어줘야지! 안 그래?”     


능청스러운 그의 대답에 박흥식은 웃음으로 마무리하며 덧붙였다.     


“검사는 내가 아니고 네가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깝다 아까워! 국가가 인재를 놓쳤네!”     


순간 기남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생에선 검사를 해 봐도 좋을 듯싶군!’     


기남은 미안한 얼굴로 박흥식에게 말을 이었다.     


“형, 나한테 형밖에 더 있어? 이번 부탁도 당연히 들어줄 거지?”

“짜식! 말이나 못 해야 밉기라도 할 텐데! 흐흐.”     


박흥식을 만나고 온 다음 날 바로 박흥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남아! 야 이 새끼들 진짜 완전 쓰레기들이야. 김성환은 강간을 밥 먹듯이 하는 새끼고, 강동필은 어린 시절부터 폭행, 절도에 찬란하다 찬란해! 그나저나 네가 어떻게 이런 인간쓰레기들을 알게 된 건진 모르지만, 네 말에 의하면 이것들이 팀을 짜서 움직일 거란 거잖아.”

“응. 그 새끼들이 지금 아지트를 짓고 있을 거야. 거기서 범죄 공모하고 은신처로 쓰면서 범행 현장으로도 사용할 거고.”

“와! 이런 왕건이를 어떻게, 아니다! 일단 이거 내가 파봐야겠어!”

“그래, 그게 좋겠어 형!”     


기남은 이참에 박흥식이 나서서 이들을 완전히 소탕하길 바랬다.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박흥식이 이들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었다.    

 

“대신 형! 내 말 절대 잊지 마! 그것들이 진행하는 아지트부터 먼저 파악해야 돼!”

“알았어! 일단 나한테 맡겨!”     


***     


지우가 작곡하고 특별히 작사까지 한 채유라의 데뷔곡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우가 작곡가다 보니 둘을 같이 캐스팅하는 프로가 많아졌고, 둘은 자연스럽게 같이할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지우의 매니저가 된 정남은 맘이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기도 늘 함께라는 걸로 정신 승리를 이어갔다.

더불어 지우가 바빠지고 인기가 올라갈수록 매니저인 자기 위상도 회사에서 올라가니 그걸로 위안 삼았다.     

“지우야 원래 작곡 실력 말할 필요도 없고, 지우 스케줄 관리하는 남대리가 정말 수고 많았어!”     


최준혁 부장의 칭찬에 정남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던 차 다시 최준혁이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회사 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네? 무슨 소문이요?”
 

정남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남대리가 채유라한테 대하는 게 사심이 가득하다는 뭐 그런? 말단이 혜성 같은 신인한테 겁대가리 없이”

“아닙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라 신경 좀 더 써준 것뿐입니다.”    

 

정남은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런 정남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최준혁 부장이 흔쾌하게 말했다.     


“아니면 됐어! 아무튼 행동 똑바로 해라, 남대리! 이제 그만 나가봐!”     


밖으로 나온 정남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혼잣말을 했다.     


“남정남! 너 정말 인간 많이 됐다! 옛날 같았음 저런 말 듣고 엎어버렸을 텐데 말이야. 잘했어!”    

 

정남은 자기가 왜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알지 못한 채 예전의 망나니에서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회사 생활에 점점 적응해 갔다.

정남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책상 위에 조그마한 쇼핑백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정남은 쇼핑백 안을 들여다봤다.

포장된 조그만 상자가 있었고, 카드도 보였다.

정남은 먼저 카드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맘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채유라 드림>     


정남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곤 상자를 꺼냈다.

포장을 풀자 상자 안에 앙증맞은 남자 팬티 석 장이 들어있었다.     


‘뭐지? 이 의미는?’     


정남의 얼굴이 더욱 붉게 물들어져 갔고, 그는 서둘러 상자 뚜껑을 닫고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한편 지우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히죽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차분하고 정적이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무에게나 인사도 넙죽 잘해 보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쟤 좀 모자란다고 하더니 진짠가?”

“설마! 근데 확실히 달라지긴 했어. 왜지?”     


지우를 보는 사람마다 설왕설래하고 있는 와중에 기남이 지우를 사무실로 불렀다.     


“매형! 저 보자고 하셨어요?”     


역시 지우가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사무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요즘 작곡 어떻게 돼가고 있어?”

“??”

“이제 신곡 준비해야 할 때 되지 않았나?”    

 

지우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채유라 줄 곡 만들고 있어요.”

“그래? 그럼, 처남 신곡은?”     


기남의 말에 잠시 지우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네. 채유라 곡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가수 지우를 기다리는 많은 팬들은 어쩌고?”     


기남의 말에 즉시 지우가 당황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맞다! 내 팬!”

“이러면 어떨까? 채유라 곡은 잠시 미루고 이제부턴 처남 노래 만드는 거.”     


지우가 고심하는 듯 약간 뜸을 들였다.

다시 기남이 덧붙였다.     


“우선 처남 노래 만들어서 신곡 발표하고 그다음에 채유라 곡 만들면 좋을 거 같은데.”     


지우가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우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급히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갔다.

그런 지우를 바라보며 기남이 혼잣말을 했다.     


‘사랑의 힘이라는 거 정말 대단하군!’     


기남은 생각난 듯 연주에게 전화했다.     


“오늘 들어갈 때 뭐 사갈까?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 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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