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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an 21. 2019

아첨의 유혹

아첨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라면

어느회사나 연말에는 정신없이 바쁘다. 한 해의 성과를 마무리 지어야 하고, 내년의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한 해의 성과와 연계해서 직원들은 조직장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학교 다닐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처럼 시험지에 얼마나 정확한 답을 써냈는가를 평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직원이 이뤄낸 성과를 정량적인 데이터로 정확하게 산출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야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나, 나는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그리고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의 경험을 들어보아도 그것만이 성과를 측정하는 잣대가 아님을 경험의 통계치로 잘 알고 있다. 


작년 평가가 끝나고 연말 회식을 하는 자리였다. 나의 팀장님은 나에게 한 해동안 수고했다라는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말을 건냈다. "D과장은 일은 잘하는데, 아첨을 안해서 문제야." 이리저리 술잔이 오가는 속에서도 농담인듯 뼈담인듯 알아서 잘 새겨들으라는 식으로 늘 친절하지 않게 직구를 날리는 그의 화법에 나는 능숙하게 "저도 잘 하고 싶은데 어케 하는지 잘 몰라서 문제입니다."라고 나름 고충인척하며 슬쩍 넘겼다. 평가가 공개되고 나는 그의 의중을 그제서야 파악할 수 있었다. 해외 영업의 특성상 모든 성과가 데이터로 주어지는 편이다. 개인이 달성해야할 목표가 제시되고, 그것은 대부분 정량적인 데이터(세일즈 숫자, 점유율 등)로 측정이 가능하다. 나는 작년 한 해 부여된 목표치를 초과달성하고, 부문내 중점 개선/혁신 활동, 멘토링 등 팀장이 요구하는 다양한 부문에서 열심히 기여하였지만 기대했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나의 평가가 기대했던 결과 이하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같은 팀 동급의 과장과의 인사고과 평가보다 나빴기 때문이었다. 같은 과장으로서 그는 업무의 성과를 내기 보다는 주로 상사와 퇴근 후 술 한잔 같이 해주고, 팀장님이 하는 말에 'Yes'해주고 '지지'하는 일에 더 공을 들였다. 팀장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조직의 문제점을 개선해야하는 일이 생길 때면 '나'를 찾았고, 회식을 하거나 자기 출장 영웅담을 얘기하고 싶을 때면 '그 과장'을 찾았다. 따지자면 일은 '내'가 하고 상사와 놀아주는 것은 '그' 과장이 하는 셈이었다. 


이쯤되면, 내가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라는 심각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일'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인가, '아첨'하며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고 기분좋게 해주는 것이 어려운 가. 까짓것 나도 좋은 아이디어 내려고 머리 싸매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하하호호 상사 기분 맞춰주며 웃어주고 들어주는 게 더 나을지 싶다. 골프쳐주고 맛집 정보 나누면서 퇴근 후 1차, 2차, 3차 순대국밥까지 하고 들어가는 일상이 성과 측정 결과에서 더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나의 노력 대비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대비 수익률)가 좋다면 해볼만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 말이다. 나름 합리적이고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팀장님도 어김없이 '아첨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인사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 서운했지만, 어쩌랴 그를 비판해봤자 이미 평가기간은 끝난 것을. 


이런 인사 평가가 처음은 아니다. 13년 동안 나는 빈번히 인사 고과 평가에서 내가 낸 퍼포먼스보다 평가절하 받았었다. 사원때는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여자이니, 고과를 잘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리더들이 대부분이었고 대리때부터는 곧잘 성과를 내지만, 먼저 챙겨줘야 할 소위 그들 라인의 남자들에게 좋은 점수를 양보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리더와 아첨에 능한 경쟁자들이 나를 평가절하하려고 짓눌렀지만, 나는 내부에서의 평가에는 초연해지기 위해 나 스스로를 곧추 세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순진하게도 아주 기본적인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자. 그것은 '아첨'으로 쌓은 모래성이 아니라, '성과'로 증명된 전문성과 네트워킹이다. 모래성은 파도가 치면 쉽게 무너지지만, 나의 전문성과 네트워킹 능력은 내부에서는 외부에서든 빛을 발할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쪽같이 꼿꼿한 선비가 되어야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라는 조직은 '사람'이 모여서 '일'이라는 것을 공유하고 함께 해나가는 곳이다. '인지상정'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되어 있다. 리더도 사람인 지라, 자신의 잘못을 실수였다라고 말해주고, 리더로서 힘들었던 경험을 들어주고, 늘의 실패를 미래의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격려해주는 직원에게 높은 인사고과 평가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격려'와 '아첨'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격려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해주되, 더 잘 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지만 '아첨'은 무조건적 동조와 지지로 발전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리더라면, 높이 올라갈수록 아첨에 의해 전략적 판단 역량과 리더쉽 역량을 과신하게 되고, 결국 주위에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아첨꾼'들만이 남을 것이다. 그런 리더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더 나아가 나는 이 회사에서 뼈를 묻고 평생 일할 것인가? 아니 그럴 수 있는 가?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렇지 않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한국의 대기업에도 더이상 직급이 존재하지 않는 트랜드로 가고 있다. 내부에서 나와 나를 외부의 직업 시장에 내놓았을 때, 나를 평가하는 잣대는 무엇인가? 과연 "얼마나 '아첨'을 잘하는 가?"가 평가 잣대가 될 수 있을까. 나를 평가하는 잣대는 '전문성'과 그에 합당한 '경력' 그리고 '네트워킹' 능력일 것이다. 내가 그동안 자존심 팍팍 구기며 아첨했던 리더들은 평생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다. 그 리더가 오너가 아니고서야. 




그렇다면 우리는 조직내에서 일희일비하며 불안한 아첨꾼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초연하게 나의 목표를 생각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매진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자명하다. 비록 나의 상반기 혹은 하반기 고과가 기대에 못 미칠지라도 더 장기적으로 숲에서 큰 시야로 봤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헛되지 않게 보낸 오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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